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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툰드라, 세상에 길들지 않으려 떠난 곳…"해탈이 거기 있었다"

2023-02-17

대구 출신 강석경 단편 모음집…1987~2022년 쓴 8편 수록

세속 떨치고 구도 자세로 자신을 찾아가는 작가 번뇌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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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강석경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표제작 '툰드라'는 주인공 주영이 치과의사인 승민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몽골 여행을 하면서 시작된다.
툰드라_표지
강석경 지음/강/312쪽/1만5천원

대구 출신 강석경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가까운 골짜기' '미불' '신성한 봄' 등 장편소설로는 꾸준히 독자를 만나왔지만 단편을 모은 소설집으로는 '숲속의 방' 이후 37년 만의 출간인 셈이다. 1974년 등단 이후 반세기가 넘었지만 자기 보폭을 지키며 최상의 언어를 선보이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출간 속도가 느린 만큼 작가가 남긴 발자국은 깊다. 특히 '석양꽃'(1987년 작)부터 최신작 '툰드라'(2022년 작)에 이르기까지 무려 35년에 걸친 작품들이 묶여 있다. 작품들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작가에게 문학이란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념을 다스리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구도(求道)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단편 '석양꽃' 말미에 한 스님은 법문과 함께 "법이 따로 없다. 밥 짓고 나무하고 보고 듣는 게 다 법이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알 듯하면서도 충분히 가닿지 못했을 깨달음은 표제작 '툰드라'에서 몽골의 한 고원 위에 이르자 "해탈이 거기 있었다"는 문장과 함께 도달한다. 소설집에 가로놓인 35년의 시간에는 해탈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오가며 견뎠던 작가의 무수한 번뇌가 담겨 있다. 그 진폭은 북구의 툰드라만큼이나 광활하다.

소설집에는 표제작 '툰드라'를 포함해 총 8편의 작품을 실었다. 세속에 진저리치며 저 멀리 탈출을 꿈꾸는 이들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하다. 세상에 결코 길들지 않으려는 작가의 날짐승 같은 감각 역시 작품 속에 오롯이 드러난다

단편 '발 없는 새'와 '보루빌에서 만난 우리' '오백 마일'에서는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우연한 사고나 치밀한 배신과 함께 박탈당하거나 소멸된다. 지적인 소유욕과 예술에 대한 갈망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발 없는 새'의 영서는 원예학자의 집을 방문한 날 불교적 사유를 가미해 완성한 김 계장의 시 앞에서 남루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다짐한다. "자신의 이상국인 정원을 세워도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근력운동을 해야 하고 회충약도 먹어야 하는 현실"의 유물론적 현실은 그에게 엄연한 진리로 다가온다. 추상적인 대상으로서의 예술과 학문을 탐닉할 때 망각하게 되는 육체와 죽음의 문제를 직시하고 붙들려 한다.

'보루빌에서 만난 우리'에서 불행한 결혼의 원인이었던 '유령 남편' 곁을 떠나 "구름이 아니라 나무처럼 뿌리 내려" 인도의 보루빌 공동체에서 자신을 새롭게 꾸려나가려 했던 시도는 이념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끝이 난다.

표제작 '툰드라'는 주인공 주영이 치과의사인 승민과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계획하면서 시작된다. 마흔아홉이 된 '주영'이 몽골로 떠나는 날, 작년부터 계속 불규칙했던 생리가 "한숨을 토하듯 찌꺼기를 쏟아내듯 마지막 출혈"을 시작한다. 그녀의 몽골행은 처음부터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기묘한 여행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회한 없이 단순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몽골의 초원행은 승민과 함께하는 여행이지만, 애초에 소유가 전제되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적 없던 주영에게 승민의 존재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소설가 이성아는 추천평에서 "소설을 다 읽고 어쩔 수 없이 '숲속의 방'의 소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석경의 소설을 따라 읽어온 나는 '툰드라'에 이르러 작가의 세상에 대한 비판이 더욱 매섭고 도저해진 것에 놀랐다. 문장의 밀도와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는 옹골찬 근력마저 느껴졌다"고 평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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