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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더 나은 세상] '함께' 글을 쓴다는 것

2023-03-16

일상생활의 에피소드 소재
각자의 경험 녹여낸 글 바탕
동료와 소통했던 시간 통해
새로운 삶의 시각과 더불어
내면세계 넓히는 계기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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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한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옛 동료가 최근 책을 냈다. 출간되자마자 택배로 책을 보내왔는데, 책 표지 안쪽에 익숙한 필체로 쓰인 글에 눈시울이 불거졌다. "변호사님은 이 책을 만들어주신 분이세요. 사랑과 감사와 존경을 담아."

우리의 특별한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정기적으로 신문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동료가 그 사실을 알고는 내게 제안을 했다. "정 변호사님, 저도 글 쓰고 싶어요. 우리 같이 글터디 해요." 글터디?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금방 이해가 되긴 했다. 함께 공부하는 것(스터디)처럼 함께 글을 쓰자는 말. 그땐 그와 친하지도 않았고, 내 글을 신문에 내기 전에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도 없어서 제안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고, 글터디를 하면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을 테니 마감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각자 쓴 글을 들고 와서, 다소 부끄러운 얼굴로 서로에게 글을 건네주고, 마주 보고 앉아 말없이 서로의 글을 읽었다. 그게 다였다. 서로의 글에 대해 품평은 하지 않았다. 그저 글을 쓰도록 독려하는 의미에서 성실히 글터디 시간을 지켰다.

처음에는 나는 내 글을 쓰고 동료는 동료의 글을 쓰는 것일 뿐, '함께'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난 신문 칼럼 외에 에세이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글터디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내 글'을 썼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차츰 동료의 글에 영향을 받아 갔다. 글은 우리가 일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아서 글을 읽고 자연스럽게 글 소재가 된 사건에 대해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그 사소한 잡담이 나의 일에, 그리고 다음 글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내 글을 쓰는 걸 넘어 동료의 글을 읽고 나누는 격의 없는 수다를 통해 동료의 시각이 스며든 새로운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재판을 앞둔 예민한 당사자의 신뢰를 얻는 법, 통 변호사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해대는 '진상들'의 내면의 깊은 상처를 좀 더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도 동료의 글을 통해서다. 글은 삶의 투영이기 마련이어서 '글터디'는 '삶터디'가 되어갔다.

글터디 횟수가 쌓일수록 다음엔 더 좋은 글을 써 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문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읽는 이의 진심에 가 닿는 글,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아 다소 거칠더라도 용기 내 써 보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열망에 새벽을 환하게 밝힐 때도 있었다. 둘로 시작한 글터디는 셋, 넷으로 확장되었고 우리는 더 신이 나 글을 썼다. 각자가 쓰는 이야기는 서로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불러왔다. 이야기가 쌓여가면서 서로의 글에 물드는 걸 넘어 서로의 삶에도 물들어 갔고, 우리 내면의 세계가 조금씩 더 넓어졌다.

동료의 책을 펼쳐 읽는다. 책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내가 그 이야기들의 첫 번째 독자였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 세상을 넓혀 준 그 이야기들이 글터디 독자를 넘어 불특정 다수에게로 전해진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그 벅참을 문자로 전했더니 동료는 이런 답문을 보내왔다. "함께 글을 쓰며 소통했던 모든 순간 덕분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출간이라는 결과로서의 기쁨은 함께 글을 썼던 기쁨의 연장이자 되새김질입니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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