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개봉 앞서 美·日 해외배급 추진 화제
각각의 사연을 가진 이들의 삶 조명한 작품
홀몸노인 집 등 소품 그대로 사용 사실성 UP
지자체 지원받아 불편함 없이 즐겁게 촬영
커피 대접·차량 지원 등 주민들 情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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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영화 한 편이 4월 극장가를 장식한다. 오는 19일 전국서 개봉하는 천세환 감독의 '보이지 않아'가 그것. 영화는 성주·고령·칠곡서 절반 이상을 촬영했다.
천 감독은 데뷔작 '연애술사' 이후 무려 18년 만에 이번 영화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강제규 감독의 연출팀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강 감독의 영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두 편의 천만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다. 그가 긴 침묵 끝에 내놓은 이번 영화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힐링영화'다. 피 튀기는 액션이나 숨 가쁜 추격전 대신에 아름다운 풍광과 꽃을 닮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는 상처와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고, 살아갈 용기를 찾는 과정을 조명했다. 이번 영화는 극장 개봉에 앞서 미국·일본 등 해외배급을 먼저 추진하면서 적잖은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주연을 맡은 한승윤 배우의 팬클럽 회원들이 SNS 게시물·포스터 부착 등 자발적으로 홍보에 적극 나서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서울 강남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감독은 이번 작품이 자신에게도 '힐링이 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천 감독은 "되돌아보면 영화 촬영 당시 저 자신도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스태프들을 섭외해 촬영하는 과정이 제겐 쭉 힐링의 과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새 영화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현실이 막막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20대, 30대, 60대, 70대까지 각기 다른 사연과 상처로 갑갑해하던 이들이 스스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나아가는 과정을 옴니버스식으로 담았어요."
▶영화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요.
"소설 '어린왕자'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는데요. 먼저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막막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어요."
▶경북지역에서 많은 장면을 촬영했다고요.
"네. 지자체 지원을 받아 경북 고령·성주·칠곡 등에서 70% 이상을 촬영했어요. 고령 개진초등 영동분교장, 성주 금수문화공원 야영장, 성주 소방서와 전통시장 그리고 칠곡 동재가산수피아 등에서 찍었어요. 촬영 당시 동네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셔서 불편함 없이 재밌게 찍을 수 있었어요."
▶한승윤·신애라·박호산 등 좋은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이 출연하는 듯하다.
"사실 저희 영화는 수십억 원을 들인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에요. 어려운 섭외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 배우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일등공신이에요. 섭외할 때 가장 먼저 신애라 배우에게 요청을 했는데, 하겠다고 해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지요."
▶박호산 배우는 대본도 읽지 않은 상태서 출연 결정을 내렸다고요.
"박호산 배우가 당시 엄청 바쁜 일정이셨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보내고 답을 기다리다가 지쳐 전화를 드렸는데,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때 너무 바빠서 대본도 읽지 못한 상태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 하나로 흔쾌히 출연 결정을 해준 것이었죠. 촬영 중에도 다른 작품과 일정이 겹쳐 힘들었을 수 있는데,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 마인드로 촬영을 진행해 주셨어요."
▶이번 작품에서 음악적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고요.
"가수 역할을 맡은 주인공 한승윤 배우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린 가수에요. 제가 이번 작품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장면이 엔딩인데요.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에 영화를 함축적으로 녹여내겠다는 의도가 있었지요. 그런 면에서 한승윤 배우가 마지막에 몽글몽글 감동적인 장면을 선물했다고 생각해요."
▶촬영장이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였다는 말이 있더군요.
"네. 주인공 직업이 가수이기 때문에 노래 부르는 장면이 제법 됩니다. 녹음된 음원을 쓰기도 했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현장에서 라이브로 직접 부르기도 했어요. 기타를 연주하면서 원신 원테이크로 촬영을 하다 보니 라이브공연장 같은 느낌이 살아났어요. 모두가 즐기면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네 주민과 협업 아닌 협업을 했다는데.
"성주지역의 모텔 한 곳을 정해 묵었는데, 촬영이 끝날 때가 되니 주민들과 아주 가까워졌어요. 경상도 분들이 정말 친절하고, 깊은 정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촬영팀 전원에게 커피를 쏜 카페 사장님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차량을 흔쾌히 지원해 준 분도 있었어요. 또 산책 중이던 동네 강아지도 우정출연을 했었죠."(웃음)
▶예고편을 보니 꽃밭 풍경 등이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촬영장소는 인위적으로 꾸미기보다는 가능하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 노력했어요. 홍보컷으로 쓰는 메리골드 만발한 장면도 어느 캠핑장 입구인데 꽃이 만발해 아름답더라고요. '공산당이 싫어요' 동상이 있는 폐교 운동장,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집 등 가능하면 소품들까지 그대로 사용해 자연스러움을 주려고 했어요."
▶첫 작품을 내고 무려 18년 만에 돌아왔는데 너무 오랜 침묵은 아니었나요.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고, 단막극 연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사실 첫 영화 이후 다른 영화도 몇 편 작업했는데, 도중에 엎어지면서 2~3년의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리기도 했지요. 그 사이에 코로나와 OTT 등 뜻밖의 변수를 만나기도 했고요. 어떤 면에서는 이 작품이 제게도 힐링이 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다음 작품에 대해서 귀띔을 한다면.
"이번 작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될 것 같아요. 잔잔하고 위로가 되는 작품이 아닌 아주 세고 강력한 뭔가가 나올 것 같아요."(웃음)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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