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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일본 오사카의 극장과 공연문화

2023-06-02

전통예술 공연도 활발…100년 된 서양식 극장 '가부키 극장'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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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코교가 운영하는 난바 그랜드카게쓰 극장.

오사카의 중심 미나미 지역은 상업도시 오사카의 면모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예능의 거리, 음악의 거리, 영화의 거리로 불린다. 에도시대, 무사보다 서민이 많았던 오사카에서는 서민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오락이 발달했다. 상업의 번영이 오락과 유흥의 흥성을 이끌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노가쿠, 가부키, 분라쿠 등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전통 공연예술은 물론 코미디나 만담 같은 대중예술을 공연하는 곳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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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오스트리아 빈에서 종일 카페만 찾아다녔던 것처럼 하루 동안 오사카 극장을 탐방하기로 했다. 먼저 관심을 가진 공연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예술 '노가쿠'이다. 노가쿠는 흔히 상상을 즐기는 예술이라고 한다. 배우가 하는 동작의 의미를 상상하며 여백과 여운을 즐기는 것이다. 오사카성을 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특히 노가쿠광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연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노가쿠는 동작도 느리고 내용도 따분하다. 사용되는 언어도 500년 전 중세 일본어이니 일본인도 알아듣기 힘들다고 한다. 노가쿠에 비하면 우리나라 판소리가 훨씬 신난다. 그런데도 지금 판소리를 즐기는 젊은이는 드물다. 그러니 일본에서 노가쿠를 찾는 사람은 추억에 잠긴 노인들밖에 없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오사카에 노가쿠 전용극장이 두 군데나 있다. 다니마치 지역의 야마모토노가쿠도와 오츠키노가쿠도이다. 전자는 전통적인 좌식 공연장이며, 후자는 현대식 입식 공연장이다.

야마모토노가쿠도는 1927년에 개관했으니,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실되어 1950년에 재건하였고, 2006년 국가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초심자도 즐거운 체험형의 노가쿠도'가 캐치프레이즈이다. 2019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G20 회의 당시 영국 총리의 인터뷰 장소로 지정되기도 했다. 갈색 나무 막대로 벽을 장식한 것이 특이했다. 그 외에는 평범한 주택 같았다. 벽에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이곳이 공연장임을 알 수 있는 정도였다. 입구를 들어서자 늘어선 다다미방 통로 옆으로 제법 넓은 공연장이 나타났다. 무대 위에는 노를 공연하는 배우가 있고, 그 모습을 여러 명이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를 본 촬영팀이 황급히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냥 공연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더니, 오늘은 공연이 없고, 동호회에서 이 공연장을 빌려 콘텐츠를 제작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아쉬웠지만 노가쿠 무대도 봤고, 잠시 공연 장면도 보았던 터라 수확이 없진 않았다. 잘 갖춰진 공연장이 부러웠다. 더 부러웠던 것은 이 전통예술을 지키는 동호회가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이었다.


미나미지역 서민오락 발달
전통·대중예술 등 다양한 공연장
공연 없는 날엔 동호회 모임도 많아
오사카서 탄생한 전통 인형극 '분라쿠'
국립극장서 5개 시리즈극 매년 열려
코미디 극장 '난바 그랜드카게쓰'
年 100만명 방문 인기 꾸준



이어서 찾아간 오츠키노가쿠도는 오사카성 인근 큰 길가에 있었다. 건물 앞에 주차된 자동차들 때문에 그냥 지나칠 뻔했다. 또 그만큼 현대식 건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1935년에 개관한 공연장이란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피해를 면한 몇 안 되는 노가쿠도이다. 좌석도 500석이 넘는 대형 공연장이다. 외관과 달리 실제 무대는 노가쿠의 공연 특성을 잘 살린 전통 방식의 무대로서 높이 평가받는다. 역시 공연이 없는지 문이 잠겨있었다. 관리인을 찾아 기웃거리다 보니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무작정 말을 걸고 공연장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니 오늘은 공연이 없어 불가능하단다. 공연이 없는 오늘 같은 날 동호회 모임을 하는데 지신도 거기에 참가하러 가는 중이란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또 부럽다.

노가쿠에 비하면 '가부키'는 훨씬 대중적이다. 17세기 후반 교토에서 탄생하여 간사이 지역에서 성행한 일본 전통극이다. 후에는 에도(도쿄)에서도 인기를 얻어 본고장을 능가했다. 가부키 배우는 모두 남자이며 세습직이다. 배우 집안에는 집마다 옥호(屋號)가 있으며, 예명도 대를 물린다. '고라이야(高麗屋)'라는 한국적인 옥호도 있다.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가 얼굴에 하얀 분장을 하고 가부키를 공연하는 모습은 일본 전통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내게는 어릴 적 인상적인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때 나는 방학 때마다 시골 외갓집에서 보냈다. 그 시절 긴긴 여름 한낮에 이모와 이모 친구들이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작은 틀에 수를 놓곤 했다. 이를 '오비(帶) 친다'고 했다. 50년이 더 지난 기억이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그 오비가 일본으로 수출된다고 했으니, 아마 기모노를 묶는 띠가 아닐까 한다. 이제 여든 넘은 모친에게 물으니, 고급 비단에 수놓는 일이었다고 기억하신다. 사실 기모노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옷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기모노, 게이샤, 가부키가 결합된 일본 전통문화의 상징은 지금도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교토 거리에 가부키를 입고 다니는 세계 청소년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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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의 오사카쇼치쿠자. 1923년 일본 최초의 서양식 극장으로 개관했지만 가부키 전용극장으로 바꾸었다.

오사카에도 최고 번화가 도톤보리에 오사카쇼치쿠자(大阪松竹座)라는 가부키 극장이 있다. 원래는 1923년에 개관하여 올해 100주년을 맞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었단다. 그런 곳을 가부키 극장으로 바꾸었다. 물론 다른 장르도 공연한다. 하지만 전통극장을 최신식 영화관으로 바꾸기는 해도 그 반대는 좀처럼 드물지 않나. 대구로 치면 한일극장이나 만경관을 판소리 공연장으로 바꾼 격인데.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무튼 이것도 부러운 것 중에 하나다. 그런데 다른 가부키 극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에혼마치역 옆에 신가부키자(新歌舞伎座)도 있다. 새로운 극장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인기 있다는 뜻 아닌가.

가부키의 고향이 1천년 고도 교토라면 분라쿠는 오사카에서 탄생한 전통 인형극이다. 1684년 오사카에서 처음 공연된 분라쿠는 가부키, 노가쿠와 함께 일본의 3대 고전 예능으로 꼽힌다. 분라쿠는 우리에게 생소한 공연예술이다. 일본 전통 악기 샤미센(三味線)의 연주와 이야기로 구성된 전통 예능 조루리 가운데 하나인 '기다유부시(義太夫節)'에다 인형극을 결합한 것이다. 어린아이만큼 제법 큰 인형을 세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인형사들이 조종하여 극을 펼친다. 인형의 눈이 움직이고, 눈썹이 올라가며 놀란 표정도 짓는다. 입이 여닫히기도 하고 손과 팔의 움직임은 우아하고도 사실적이다. 인형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인형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니폰바시 부근에 국립분라쿠극장이 있다. 오사카가 본고장이니 극장도 국립이다. 1984년에 개장했는데, 3주 동안 지속되는 5개의 시리즈 공연이 매년 열리고 있다. 극장 건물은 현대적 시설과 전통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극장 문은 열려 있지만 역시 공연은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로비를 둘러보며 분라쿠 인형과 각종 공연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는 설명에 눈길이 갔다.

이 외에도 오사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통 공연으로는 '라쿠고(落語)'나 '로쿄쿠(浪曲)' '만자이(漫才)' 등이 있다. 모두 샤미센 반주를 곁들이는 공연이다. 라쿠고는 300년 전에 출현한 서민오락이다. 배우 한 명이 서민의 생활이나 옛날이야기 등을 몸짓과 표정을 섞어가며 익살스럽게 들려주는 만담을 말한다. 로쿄쿠는 우리 판소리와 비슷한데, 오사카 출신 연기자 나니와이스케의 연기가 크게 유행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라쿠고나 로쿄쿠 등을 공연하는 곳을 '요세(寄席)'라고 하는데, 전성기 때는 오사카에만도 수십 곳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데, 그래도 오사카에 요세가 두 군데나 있다. 우리가 찾았던 텐만궁 입구의 텐마텐진한조테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57년 개관했으나 줄곧 문을 닫았다가 텐만궁의 지원을 받아 2003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니시나리에도 도락테이라는 요세가 있다. 특히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 공연을 하고, 격주로 낮 공연도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명맥만 겨우 잇는다는 게 엄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만자이는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의 콤비가 대사와 몸짓으로 연기하는 만담이다. 만자이는 요즘에도 인기가 많다. 현재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콤비 개그맨들 대부분이 만자이 콤비이다. 그래서 오사카 출신 개그맨들이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전통 예능이 현대화된 전형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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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바 그랜드카게쓰 극장 매표소에 줄을 선 오사카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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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인기가 많다 보니 만자이는 주로 난바 한가운데 있는 코미디 전문극장 '난바 그랜드카게쓰'에서 공연된다. 이 극장은 일본 대중문화의 대명사라고 하는 연예기획사 요시모토코교(吉本興業)가 운영하는 극장이다. 1912년 창립된 요시모토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연예기획사이고 본사도 오사카에 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웃음의 전당'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말 그대로 온갖 '우스운' 것들이 모두 여기에서 공연된다. 홀에는 간판급 개그맨은 물론 텔레비전에 갓 등장한 신인 개그맨까지 배우들의 사진과 레퍼토리가 즐비하게 붙어있다. 이곳에는 만자이 같은 전통 만담을 비롯해 요시모토 신희극과 폭소 넘치는 각종 공연을 1년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연간 100만명이 찾는단다.

오사카의 인구는 우리 대구와 비슷하다. 그런데 전통 공연부터 현대 희극까지 다양한 공연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장르마다 전문극장을 갖추고 있다. 우리의 공연문화는 너무 다양성이 부족한 건 아닌가 반성해 본다.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도시라야 사람이 모인다. '컬러풀'해야 '파워풀'해지는 게 아닐까.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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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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