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다:행복한 대구교육 이야기' 공모전 수기 '대상'] 불독 같은 사랑 - 대구 삼육초등 김둘 방과후교사
사서교사로 간 학교서 아이들 이야기 들어주며 추억 나눠
이별 앞둔 학기엔 학생들이 도서관 홍보물로 마음 전해와
장난감 덮은 종이에는 사랑 담은 글도…내게는 큰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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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삼육초등 도서실 유리문에 아이들이 직접 쓴 도서실 홍보문이 붙어 있다. 〈김둘 방과후교사 제공〉 |
영남일보 '2023 다:행복한 대구교육 이야기 공모전' 수기 부문 수상자가 지난 5일 발표됐다. 대상을 비롯한 금상, 은상, 동상 등 수상작 6편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지면 관계상 글의 전부를 담을 수 없어 불가피하게 분량을 줄이거나 발췌해 게재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는 바이다.
도심에 이런 학교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수성구에, 금방 폐교될 것 같은 낡은 건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니! 교문을 들어서며 그 작은 규모에 놀랐던 학교였다. 나는 작년에 한 학년에 한 반, 전체 6학급뿐인 대구삼육초등학교에서 사서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조그만 도서실은 오래전에 지어진 듯 낡은 책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그래서 더 귀한 곳으로 다가왔다. 어지간한 초등학교 도서실은 날마다 신간으로 채워지고 있지만 이 학교 도서실은 그 사실에 기죽지 않는 낡은 책들이 기세등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 학교 역사의 흔적일 것이다. 이제는 여느 학교 도서관에서는 사라졌을 귀한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오래되고 귀한 책들을 볼 때마다 기쁨의 탄성이 쏟아졌다. 어쩌면 새로운 신간이 가져올 수 없는 오래된 행복이 이 도서실에 자리를 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도서실에 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얼마 안 되는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도서실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도서실 도우미'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자리 정리며 청소 같은 자잘한 일을 부탁했더니 1학년 민지가 선뜻 도우미를 하겠다고 했다. 그 후로 민지는 매일 점심시간에 도서실에 와서 청소와 책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다지 손이 필요할 만큼 업무가 많지 않았지만 나는 민지가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느라 일부러 책장 정리하지 않기도 했다. 이후로 1학년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자기들도 도우미를 하겠다는 것이다.
"얘들아. 도서실에는 이제 도우미가 필요하지 않아. 도우미가 두 명이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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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빠진 불독 장난감이 아이들의 위로글이 적힌 종이봉투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 〈김둘 방과후교사 제공〉 |
아이들은 도서실 도우미를 하면 매주 한 번씩 선생님이 간식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작은 간식을 주었는데 그 애들이 교실에 가서 소문을 낸 것이다.
며칠 동안 1학년들이 오지 않아 도서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우미 활동을 열심히 하던 민지와 운찬이까지 오지 않았다. 이제는 도우미를 하지 않으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도서실 출입 금지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1학년들이 쉬는 시간에 서로 도서실 도우미를 하겠다고 하며 다투었던 모양이다. 선생님께서 다툼했던 아이들을 꾸짖고 도서실에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란다.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아이가 몰려와 도우미를 하겠다며 아우성쳤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도우미는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점심시간마다 몰려와서 자기들에게 일을 시켜달라는 아이들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한다. 길어져서 좋을 일이 아니다 싶어서 결국 도우미 시험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시험 과목은 주로 책상 닦기, 책 정리하기, 책 옮기기 등 도서실에서 필요한 동작들이었다. 순서대로 신청한 아이들 10명이 시험에 응시했다. 도서실에서 도우미 시험이 있다고 입소문이 나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시험에 응시한 학생은 열심히 책을 옮기고 책상을 닦았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자기와 친한 아이들이 시험을 칠 때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그렇게 열렬하고 간절하게 시험을 치르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친구들을 응원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너무나 예뻤다. 점심시간 동안 시험이 이루어졌고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언제 합격자 발표가 나느냐 묻는 아이들에게 일주일 뒤에 발표한다고 했지만, 일주일이라는 감각을 모르는 아이들은 매일같이 도서실에 뛰어와서 발표 여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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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사실, 아이들은 도서실 선생님이 주는 간식을 먹기보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듣고 있으면 많은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재미나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뭔가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다. 너무 바쁜 생활 속에서 가끔 느꼈던 외로움. 그걸 해소해 주는 게 재미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랬기에 도서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재미났던 모양이다.
여름방학이 지나가고 가을이 되었을 때는 2·3학년들까지 도서실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1학년들의 도서실 도우미 이야기를 들은 2학년 아이 중 몇 명은 자신들도 도우미를 하겠다고 나섰다. 1학년만 해도 도우미는 충분하다고 알려주며 너희들은 도서실 이용자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이후부터 도서실에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아이들로 더 북적거렸다. 대부분 저학년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러 도서실에 오는 것이라는 걸 교무실에서도 점점 눈치채기 시작했다.
2023년은 사서교사를 하지 않기로 하여 겨울방학이 될 무렵 아이들에게 알렸다. 한 아이가 이별 선물로 도서실 홍보지를 꾸며주겠다고 했다. 도서실 유리창에 붙일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것이다. 도화지를 내주었더니 점심시간마다 아이들이 와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멋진 문구도 같이 써 주었다. 그렇게 한 달여 동안 학생들이 들락거리더니 마침내 그 애들이 써준 홍보문구가 도서실 유리문에 붙었다. 절로 웃음이 나는 문구였다.
'김둘, 여기는 천국'
'어서 옵시오! 요기 도서관은 서비스 최고입니다! 도서관은 삼육에서 서비스 플레이스! 여러분 더 똑똑해지고 싶은가요? 삼육도서관으로 오십시오! 항상 따뜻하고 반갑게 학생들을 맞이하는 도서관 선생님이 계십니다. 조용하게 독서하고 싶은 분 오십시오.'
'도서관에 들어오려면 참참참 게임과 불독 게임을 이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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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안녕하세요? 여기 도서관에 안 오면 여러분 얼굴이 윤겔라가 됩니다! 얼굴이 이랬다가 이렇게 됩니다. 그니까 빨랑 들어오세요.'
'게임도 하고 책도 읽어 똑똑해지는 도서관. 책과 친구가 되는 도서관. 고구려 이름을 지어주는 김둘 선생님. 어서 오시오! 없어지지 말아 도서관, 젤리는 도서관 도우미들만!'
'도서실에서는 게임도 하고 고구려 이름도 쓰고 책도 읽고 똑똑해진다. 책과 친구도 된다.'
재치 있고 멋진 홍보물 덕분에 도서실 근무가 더욱 행복했던 지난해 연말, 아이들의 그 마음들이 어찌나 이쁘고 고마웠던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을 더 분명히 느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맞장구쳐 주고 아이들의 눈을 일일이 맞춰주는 일,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욱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어 다시 들려주는 일을 지속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마치 이야기를 찾아 나에게 온 요정들 같았다. 그렇게 나도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 요정이 되어 갔다.
도서실 홍보물 광고가 온 학교에 소문이 났다. 쑥스러운 마음에 도서실 유리문에 붙은 도화지를 뜯어내려 했더니 교감 선생님께서 보기 좋다고 그냥 두라고 하신다. 가끔 학부모님들이 상담하러 도서실에 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홍보지를 보면서 다들 행복해하신다고 한다.
어느 날, 도서실에 놀러 온 아이들과 몰래 불독게임을 하다가 불독의 턱이 빠져버렸다. 플라스틱 장난감이지만 불독에게 미안했다. 나는 불독이 입원 중이라며 종이봉투 이불을 만들어 주고 책상 위에 '불독은 입원 중, 불독을 만지지 마세요'라는 글을 적은 종이를 올려놓았다. 업무 때문에 다른 교실에 다녀와 보니 불독 이불로 사용했던 황 봉투 겉표지에 이런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불독아, 아프지 마. 불독아, 힘내. 불독아 우리가 괴롭혀서 미안해. 불독아 입원했으니 곧 나을 거야. 치료 잘 받아….'
'도서실 불독 입원 중, 월월!. 절대 안정!, 만지지 마세요, 삼육대학병원 마취 중, 만지면 15만원 벌금, 부모님돈X 자기돈O, 삼육불독 136호 병실'
또 다른 종이에는 멋진 불독 그림과 신상명세도 적혀 있었다.
'나이 : 3살, 생년월일 : 2022년 4월6일, 성별 : 중성(중성화 수술 했음)'
불독 그림의 한 귀퉁이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둘'
누가 이런 글을 쓰고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삼육아이들이 불독에게 마음을 전한 것이다. 아니, 내게 마음을 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두세 명의 여학생이 찾아와서 불독에게 주사를 놓아주겠다 한다. 자기 꿈이 의사인데 미리 봉사하겠다고 하면서 장난감 주사를 가져와 플라스틱 불독의 엉덩이에 주사를 콕, 놓아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가슴이 뭉클했다. 옆에 같이 따라온 아이들도 친구가 주사를 놓아주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한 표정으로 내일은 불독이 먹을 약을 가져올게요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너희들이 아픈 불독에게 주사를 놓아주니 이곳은 '삼육대학병원'쯤 되겠구나 했다. 아이들은 내일 다시 주사를 놓아주러 오겠다고 하며 불독을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하며 교실로 돌아갔다.
2023년은 방과후교실 독서 논술 교사로 도서실을 드나들고 있다. 그때 그 불독과 홍보지는 도서실에 없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나를 만나러 도서실에 찾아온다. 도우미 활동했던 운찬이, 민지, 민우는 2학년이 되니 좀 더 의젓해졌다. 도서실 도우미 시험을 쳐서 탈락한 아이들도 지금은 모두 방과후교실의 중요 구성원이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불독은 어디 갔어요?"하고 물어보면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응, 요양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가끔은 불독이 잘 지내는지 병문안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되니 전하고 싶은 말만 해달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불독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 한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전해 달라고 한다.
아이들이 도화지에 그려준 그림들과 홍보물, 그리고 턱이 빠진 불독과 아이들의 마음이 적힌 황 봉투 이불을 고스란히 내 서재에 옮겨 왔다. 아이들의 그 마음을 어찌 버리겠는가. 불독은 또 어찌 버리겠는가. 도서실에 들락거리면서 불독 같은 사랑을 가르쳐 준 아이들이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도심의 작은 학교, 대구삼육초등학교 학생들이 이렇듯 불독 같은 사랑을 전해줄 줄 어찌 알았던가.
우리의 만남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서로 주고받았던 사랑이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불독에게 보낸 편지로 아로새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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