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부부와 60대 아버지·20대 딸 등 4명 숨져
장수면, "산이 그렇게 무너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풍기읍, "골짜기 최근 벌목…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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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6시 17분쯤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의 한 야산의 토사가 쏟아져 주택이 붕괴되면서 80대 노부부가 매몰돼 119구조대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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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6시 17분쯤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의 한 야산의 토사가 쏟아져 주택이 붕괴되면서 80대 노부부가 매몰돼 119구조대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하천하고 멀리 있고 상대적으로 안전할 줄 알았는데… 산사태가 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거센 장맛비가 사흘째 이어진 15일 새벽 6시 17분쯤, 경북 영주시 장수면의 한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가 '우르르 쾅'하는 굉음과 함께 뿌연 연기가 솟구치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고 한다.
그리곤 마을을 살펴본 A씨는 80대 노부부가 함께 사는 주택 뒷산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면서 토사에 주택이 매몰된 것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마을 이장 송모씨는 "평소 소나무 등으로 우거져 있었던 산이 그렇게 무너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면서 "오히려 옆 마을 산이 산사태 위험도가 커 주민들을 대피시키면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산사태가 난 주택 주변은 참혹한 광경이었다. 토사로 한옥 한 채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또 다른 주택 한 채는 반이 무너져 토사와 돌, 나뭇가지, 잡동사니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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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6시 17분쯤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의 한 야산의 토사가 쏟아져 주택이 붕괴되면서 80대 노부부가 매몰돼 119구조대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수색 작업 3시간여 만에 노부부 중 남편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구조 대원들이 구급차에 옮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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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7시 27분쯤 영주시 풍기읍에서 산사태로 토사가 주택을 덮쳐 사람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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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7시 27분쯤 영주시 풍기읍에서 산사태로 토사가 주택을 덮쳐 사람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주택 아래 도로에도 토사가 유입돼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
사고 발생 후 소방당국은 장비를 동원해 노부부를 찾느라 분주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을 가장 빨리 찾은 노부부의 셋째딸과 사위, 손자 등 유가족들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져 갔다.
그리고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난 오전 9시 20분쯤 무너져 내린 주택 마당에서 119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부부 중 남편이 발견된 것이다. 남편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구조 대원들은 부인을 찾기 위해 또다시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유가족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이어 사고 발생 4시간 50여 분 만인 오전 11시 8분쯤 부인도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오전 7시 27분쯤 영주시 풍기읍에서도 산사태로 사람 3명이 매몰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백산국립공원 인근에 있는 이 마을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산사태로 인해 도로에 토사가 흘러넘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산골짜기마다 돌무더기와 나뭇가지, 빗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사고가 난 곳도 소백산의 한 골짜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주택 옆으로는 토사와 함께 마치 계곡물이 흐르는 것처럼 누런 흙탕물이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었고, 쏟아진 토사로 인해 주택 앞 도로는 통제됐다.
사고 후 3명 중 1명은 다리까지만 토사에 깔려 무사히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2명은 사고 발생 2시간 10여 분 만인 오전 9시 35분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부녀 관계인 이들은 집 안에 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을 주민은 "며칠 전부터 비가 계속 오면서 골짜기로 많은 물이 흘렀고, 전조 증상과 함께 분명 미리 대피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주민은 "골짜기 위로 최근 벌목작업을 한 것 같다"며 "미리 산사태 위험을 감지해 대피시켰다면 아까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영주 지역에선 호우피해로 4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 밖에도 영주시 단산면의 한 마을 주택 6채가 산사태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이들 지역 주민들은 산사태가 우려돼 인근 노인정 등에 대피한 상태여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글·사진=손병현기자 wh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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