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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

2023-08-18

일본 100년 전 대지진 이후

조선인 수천명 이유없이 살해

사죄·반성이 파트너 출발점

문제제기 특별법제정 못한

역대정부와 국회 반성해야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일본의 도쿄를 비롯한 간토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어진 화재로 인해 사망자는 10만명에 육박하고 부상과 실종자도 15만명을 넘는다. 사라진 가옥 70만 채 이상, 이재민은 약 340만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일본이 반출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과 경복궁의 자선당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대지진에서 겨우 살아남은 조선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심의 이반을 우려한 일본 정부와 계엄 당국이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 '무장해서 열차를 습격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여 평범한 시민들의 공포와 분노를 유발하였다.

그에 따라 재향군인회가 중심이 되어 자체 무장한 자경대가 조직되었고, 조선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참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우선 조선식 옷을 입은 이는 바로 죽음을 당했으며,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발음이 어려운 '15엔 50전(쥬고엔 고주센)'을 시켜보아 조금만 이상하면 살해해 버렸다고 한다.

당시 죽음을 당한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엿장수, 배달부, 인력거꾼을 비롯한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나 고학생들이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들의 출신 지역을 보면, 경상도가 가장 많았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대학생들은 대부분 방학을 맞이하여 귀국한 상태였기에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자경단의 살상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상당수는 암매장되었다. 이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일본의 공권력은 학살을 오히려 조장하였고, 심지어 자경단을 불러 수용했던 조선인들을 '불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살해된 조선인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다. 참고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사한 결과는 6천661명이었다.

당시 일본의 내무대신은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 출신이며, 경시총감은 3·1운동 당시 경무국장이었다. 계엄군의 핵심 관계자들은 동학 농민군과 의병을 살해하고 3·1운동을 탄압했던 자들이었다. 재향군인회란 바로 거기에 동원되었던 병사 출신들이었다. 그들에게 조선인은 일본이 위기에 빠지면 언제든지 공격해 올 수 있는 세력이라는 공포심이 내재되어 있었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숫자를 축소해서 발표하였고, 살인을 저지른 자경단원들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하였다. 그들은 진상조사 작업도 방해하였고, 목격자의 증언도 유언비어라는 이유로 가로막았다. 하지만 조선인 학살은 일본 정부가 유도하고, 민중이 동원되어 직접 학살에 가담한 국제 범죄이며 제노사이드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일본에서는 역사부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당시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없었으며 자경단이 정당방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일본은 9월1일을 방재의 날로 정하여 재난에 대한 대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에 대한 범죄행위를 기억하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진실한 사죄와 반성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가 되는 출발점이다. 그동안 일본에 대해 아무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던 역대 정부와 특별법 제정조차 못하는 국회는 반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일의 뜻있는 분들이 민간 차원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하여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이다. 100년 전에 이유 없이 죽어간 분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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