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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여름의 끝

2023-08-28

[문화산책] 여름의 끝
배은정<소설가>

수영장 회원들은 통성명 전까지 별칭을 부른다. 늘 선두에 서는 '1번' 같은 확고한 뭔가 없다면 온갖 시각적인 정보가 동원된다. 이름 없는 이를 불러야 하는 일은 고충이 따른다. "거기 있잖아"로 시작해서 스무고개 비슷하게 후보군을 좁혀가도 동상이몽인 경우가 많다. 이름의 효용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중에 알게 된 나의 이름은 시계였다. 코로나 시기에 자유 수영을 하며 운동량을 일정하게 재려고 산 것이다. 그나마 시계라도 찼으니 망정이지. 얼마나 특징이 없으면 시계였을까. 아무튼 그날의 영법별 운동 시간과 열량을 공유했으니 나름 이름에 걸맞은 역할에 충실한 셈이다.

직관적인 이름 짓기는 농인들의 '시각 이름'과 비슷하다. 농인들은 이름이 두 개라고 한다. '문자 이름'을 일일이 쓰려면 불편해서 눈으로 보여주는 '시각 이름'을 사용한다. 얼굴의 특징을 빌려오는 사례가 많아 '얼굴 수어'라고도 한다. '얼굴 특징+성별'로 '코가 예쁜 여자'가 되는 방식이다. 농인은 관찰력이 뛰어나고 직관적 표현에 능숙하다고 내게 알려준 수어 통역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결혼 전 남편이 지어준 이름이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의미도 있더란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까지 간파당해 놀랐다고 했는데, 상대를 오래 바라봐야 비로소 다가오는 이름 같았다.

글 작가는 단어의 수집가이자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시인처럼 어느 시절의 이름을 지어다가 두고두고 꺼내먹어도 좋겠다. 산책을 하며 이 계절의 걸맞은 이름을 찾아본다. 발아래서 뽀득 소리를 내며 밟히는 버찌, 한여름보다 비껴드는 그림자, 확실히 줄어든 날벌레들, 여름 내내 잊고 있던 뜨거운 음식들.

집에 들어가는 길에 국 포장 전문점에 들렀다. 문 닫을 시간이라 그런지 갈비탕을 샀는데 선짓국이 덤이다. 에어컨 없이 뜨듯한 국물이 먹힌다는 건 계절이 변했다는 의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끝나간다. 더불어 지난 두 달간 주말을 골몰케 했던 이 칼럼도 오늘로 마무리된다.배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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