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엔 음악이 없었다 한낮이었다 환했다 음악이 없었다 방이 점점 좁아졌다 다리가 많은 벌레는 다리를 점점 떼어내며 죽어갔다 바닥에 단어들이 떨어졌다 음악이 없었다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죽은 한 마리를 건져냈다 물이 크게 출렁였다 남은 물고기에 나의 다리를 붙여보았다 음악이 없었다 다시 나의 다리를 떼어냈다 음악이 없었다 남은 물고기가 크게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어항이 점점 넓어졌다 환했다 한낮이었다 음악이 없었다 방이 점점 좁아졌다 나는 남은 사람이었다 지느러미가 크게 흔들렸다 방과 어항이 같은 넓이를 가졌다"
신영배 '방과 어항'
신영배 '방과 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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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시인) |
신영배는 한국의 현대시사에서 물의 물질과 본질에 대한 생각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시인이다. 신영배의 모든 시는 물의 안팎에 속해 있다. 시는 물속에 고여 있거나 물속에서 움직인다. 시인의 물은 공기이거나 생이거나 시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도 화자를 둘러싼 방이 점차 물이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음악이 없는 방은 자신의 숨소리만 확대되는 공간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리가 많은 벌레의 다리를 떼어내는 행사는 생각들의 곁가지를 떼어내는 과정이다. 방 전체에 자신의 생각이 가득 차면서 생각이라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생긴다. 그 물고기는 시인이 건들자마자 죽은 물고기이다. 어떤 생각을 의식할 때 이미 다른 생각이 들어가므로 순수함이 아니라는 생각. 그리스 이후 물과 불, 공기와 흙은 물질을 훌쩍 뛰어넘어 사유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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