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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窓] 과잉 공급된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 강력 규제 필요

2023-09-08

[메디컬 窓] 과잉 공급된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 강력 규제 필요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최근에 70대 환자가 서울에 있는 상급 종합 병원에 가기 위해 진료 의뢰서를 발급받으려고 내원하였다. 그 환자는 단순 두통만 있는 상태여서 종합병원의 진료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아들이 예약을 해 놓아서 진료 의뢰서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 환자뿐만 아니라 많은 경증 환자들이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의 진료를 받으러 상경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대형 병원들은 이런 수요를 맞추기 위해 수도권에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8년 이후 수도권에 최소 6천600개 병상이 더 생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병상 수는 기준 인구 1천명당 12.8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고 OECD 평균 4.3개의 약 2.9배에 달한다. 예정대로 분원이 설립된다면 불과 5~6년 사이에 기존 병상 대비 30%에 가까운 병상이 수도권 지역에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최신 설비를 갖추고 교수급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 문제는 수도권에 대형 병원들의 병상이 늘어나게 되면 환자뿐만 아니라 지방의 의료 인력까지 흡수하여 지금도 경고등이 켜져 있는 지역의 필수의료 붕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병상 6천600개 확대에 따라 의사는 약 3천명, 간호사는 약 8천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결국 지역의 의료 인력들이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보건복지부가 병상 총량제를 도입해서 전체적인 병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 무렵에도 한국의 인구 1천명당 병상 수는 OECD 평균을 넘어선 상태였다. 20여 년 전부터 한국은 전반적으로 병상이 과잉 공급돼 있어 병상을 늘리기보다는 줄여야 하는 상태였다. 예상이 어려웠던 일도 아닌데 정부가 분원 설립에 제동을 걸 수는 없었을까? 기본적으로 병원급 의료기관 신규 개설 허가 권한은 중앙정부가 아닌 시·도지사가 가지고 있다. 지자체 단체장과 지역 정치인들 입장에서 대학병원 유치는 가시적 성과가 된다. 주민들도 병원 이용 측면에서나,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나 이를 호재로 여긴다. 제도적으로 병원이 무분별하게 설립하기 좋은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늦었지만 지난 8월 국회에서는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개설하려는 경우, 시·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사전 심의·승인을 받도록 하고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개설 시,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또한 복지부도 최근에 과잉 공급된 병상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발표하였다. 문제는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소급적용하기는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분원이 개원 후 병상의 단계적 확장을 추진한다면 이에 대한 제재는 이뤄질 전망이다.

의료 인력의 지역분배 실패는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중증외상 등 24시간 운영이 필요한 응급환자 진료가 더욱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팀 구성이 안 되니 의욕적으로 수술을 하려는 교수들이 점점 더 서울·수도권 지역으로 집중될 것이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 균형을 고려한 병상 배치 정책을 시행하여 지역의 의료 불균형과 필수 의료붕괴를 막아야 할 것이다.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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