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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소설의 시대는 끝났다

2023-09-15

[정만진의 문학 향기] 소설의 시대는 끝났다
정만진 (소설가)

"소설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이 돌고 있다. 전통적으로 소설은 거대담론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 최초의 현대장편 '무정' 등도 가벼운 읽을거리는 아니었다.

이제는 이른바 본격소설도 개인적인 연애 이야기를 담거나, 아니면 흥미 본위의 탈전통적 장르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인류의 미래라거나 웅혼한 시대정신을 탐구하는 장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약 50여 년 전 인물인 하이데거의 통찰을 참고할 만하다. 하이데거는 현대인을 실향민에 비유했다. 급변하는 기술문명 시대의 현대인은 자신이 역사상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가장 비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기술문명 속 인간은 사회적 조직체계의 관리와 처분에 결정권을 내맡길 수밖에 없으므로 객체로 전락한다.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강력한 힘의 도구에 멈추게 되고, 창조성 발휘의 기회를 봉쇄당한 채 정신적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경험한 바 없는 자극적 문화산업에 지갑을 열면서 자신의 품격이 향상되는 착각에 빠진다. 심신을 혹사한 대가를 지불하고 획득한 소비재에 도취되어 자신을 기술문명의 주체로 착각한다.

이런 현상을 하이데거는 "현대인은 권태와 무기력을 벗어나기 위해 소비와 오락에 몰두하거나, 남을 헐뜯음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올리려는 가십거리로 하루를 채운다"라고 해석했다.

1890년 9월15일 출생한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네이버캐스트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황금시대에 활약했던 수많은 작가들 중 그녀의 작품만 끊임없이 읽히고 드라마로 재생산되는 것은 어째서일까?"라고 자문한다.

자답은 이렇다. "문학성보다 철저한 대중작가로서의 의식을 지녔던 크리스티의 작품은 복잡하게 꼬이지 않은 스토리와 평범한 일상성,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플롯과 기발한 트릭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를 사로잡았다.

크리스티의 사례는 소설의 시대가 끝나가는 원인을 웅변해주는 듯하다. 현대인은 예술적 가치보다 단순 기묘한 흥미에 시간을 더 투여한다. 그렇게 주체성을 잃고 거대한 힘의 조종에 삶을 내맡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인간소외 현상의 한 부분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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