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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주 양남 수렴리 지경마을과 바다

2023-09-15

시선 강탈 그무바위·여기굼바위…있는지 없는지 모를 '지경'

[주말&여행] 경주 양남 수렴리 지경마을과 바다
지질시대에는 이 일대가 모두 곶 또는 바다 쪽으로 돌출한 섬이었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약한 것들은 깎여 나갔고 강한 것들만 남은 것이 지경 해안의 바위들이다.
[주말&여행] 경주 양남 수렴리 지경마을과 바다
지경마을 내항에 몇 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다. 선양장이라 할 자갈밭에도 두어 척의 배가 끌어올려져 있다. 내만이 완만해 마을의 규모에 비해 방파제가 길고 내항이 크다.

경주의 가장 남쪽 갯마을 지경. 양남면 수렴리의 4개 마을에 속해 있지만 저 홀로 뚝 떨어져 있다. 자근자근 걸을 수 있는 해안 길도 저만 없어 경주 쪽에서 내려가면 없는 듯 작은 곶에 감춰진 마을이다. 또 울산 쪽에서 오르다 보면 강동의 신명마을과 이어져 길의 끝이 되어버리는데, 연안의 형세가 똑 닮아 여기가 신명인지 지경인지, 어디서부터가 지경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쭉 뻗은 동해안로에서 지경교차로를 만나면 곧장 빠져나가 좁은 복개도로를 따라 바다로 갈 일이다. 그러면 몸의 한쪽은 신명, 한쪽은 지경에 놓이게 된다.

◆수렴리 지경마을

복개도로를 따라 바다에 닿으면 왼쪽은 경주의 지경마을, 오른쪽은 울산의 신명마을이다. 옛날에는 마을 뒷산 지경골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이 두 마을의 경계선이었지만 30년 전쯤 복개가 되어 한 마을처럼 되었다. 길 좀 만들어 달라고 사정해 울산시와 경주시가 반반씩 부담하여 공사를 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물도 나누고 전기도 나눴다니 공적인 영역에서 어떤 교섭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삶의 지속에 있어 신명과 지경은 함께였다. 수렴리의 다른 마을들은 코끝도 보이지 않는데 강동의 긴 해변과 높은 아파트들은 바로 저어기서 번쩍거린다. 모든 커다란 것, 번쩍거리는 것들을 팽개치고 북쪽으로 몸을 휙 돌리면, 작고 고요하고 양지바르고 아늑한 지경마을이 오롯하다. 지경(地境)은 땅의 경계라는 뜻이다.


수렴리 속한 4개 마을 중 홀로 '뚝'
경주 최남단 곶에 감춰진 갯마을
軍 출입통제 풀리며 해변 입소문
온갖 형상 바위들 사진촬영 명소



내항에 몇 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다. 선양장이라 할 자갈밭에도 두어 척의 배가 끌어 올려져 있다. 내만이 완만해 마을의 규모에 비해 방파제가 길고 내항이 크다. 등대는 빨간 등대 하나다. 지경마을에는 25세대 정도 산다고 한다. 그 가운데 어업을 하는 사람이 10여 명, 대게, 참가자미, 통발, 유자망 어업을 하는 배가 마을 통틀어 10척 정도 있다고 한다. 미역이나 다시마, 전복 등의 해산물도 많이 나 양식도 하고 채취도 한다. 옛날에는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바다 쪽으로 정어리기름을 짜기 위한 공장이 있었는데 주로 항공유로 쓰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농사도 짓는단다. 주로 벼농사인데 해풍을 맞은 지경쌀은 차지고 밥맛이 좋아 인근에서도 더 쳐준다고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농사지을만한 땅이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에 밭이 있는 걸까.

긴 방파제의 외항으로 테트라포드들이 더미로 부려져 있다. 그곳에서부터 이어지는 해안은 자갈밭이고 굵은 모래밭이다. 그리고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그리스신화 이전 세계의 티탄들처럼 서 있다. 깊은 바다와 하늘로부터 성큼성큼 아주 오래 걸어오다 마침내 이 바닷가에 닿자 기진맥진 서버린 모습이다. 밤에 진지하게 꿈을 꾸는 듯하고, 파도 소리는 내 귓속에 있어 몸이 통째 고둥이 된 듯도 하다. 이곳은 캠핑, 물놀이, 스노클링, 그리고 해돋이 명소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 있다. 여름이면 바위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텐트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마다 속으로 생각한단다. '다들 어떻게 알고 왔지?'

[주말&여행] 경주 양남 수렴리 지경마을과 바다
[주말&여행] 경주 양남 수렴리 지경마을과 바다
지경해안은 옛날 군 경계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높은 바위 곳곳에 얕고 좁게 깎아 높은 계단이 보인다. 몇몇 봉우리에는 초소가 남아 있다.

◆지경의 바다

수렴리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병의 병영을 두었던 곳으로 수용포리라 했다. 지금은 수렴(수용포), 영암, 관성, 지경 4개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성과 지경이 수렴2리다. 수렴항 광장에 '무장공비 격멸 전적비'가 있는데 1983년 8월5일 새벽에 수렴리 바다로 침투하던 무장공비 5명을 섬멸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렇다. 수렴리 바다는 군사지역이었고 지경의 바다 또한 얼마 전까지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곳은 십여 년 전 군 경계 시설물이 철거되고 개방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높은 바위 곳곳에 얕고 좁게 깎아 높은 계단이 보인다. 구석기인들의 솜씨가 아니라 우리 해병대의 기술이다. 몇몇 봉우리에는 초소가 남아 있고 지경마을 해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는 소문도 있다.

커다란 바위 꼭대기에 소나무가 멋있게 서 있다. 초소병 같다. 그 곁에 또 다른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이곳은 특히 사진작가들에게 유명하다. 12월 초중순경 맑은 날에, 이 두 개의 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7월에서 9월 사이 남쪽에서 태풍이 동해로 올라오는 시기가 가장 멋있다고 열변한다. 해변의 모래를 삼키며 거친 파도가 들어올 때, 우의와 가슴장화를 신고 그 바다에 살짝 잠기어 서서 충분한 빛을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한때를 부여잡아 구름이나 아침노을을 촬영한다는 것이다. 욕심인지, 집착인지, 해탈인지, 뭘 모르는 것인지, 순수하게 미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용기는 오죽하다. 오늘도 바위들 사이에 텐트 하나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지질시대에는 이 일대가 모두 곶 또는 바다 쪽으로 돌출한 섬이었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약한 것들은 깎여 나갔고 강한 것들만 남은 것이 지경 해안의 바위들이다. 마을의 유래를 보면 '여기굼바위, 그무바위 등 주위의 바위를 이용하여 미역, 전복 등의 양식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바위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었을 듯싶다. '여기굼바위에 머릿수건을 놓고 왔네' 혹은 '그무바위에서 빗창을 떨어뜨려 버렸네'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지 않았을까.

코오롱이라 적힌 빈 건물 하나가 스산하게 서 있다. 펜션, 합숙소 또는 하계휴양소라고 불리는 저 건물은 2000년대 초 코오롱에서 임직원용으로 세운 것이라 한다. 가짜사나이 2를 이곳에서 찍었단다. 이곳에 건물을 세운 코오롱도, 이곳을 찾아낸 로케이션헌터들도 참 대단하다. 건물 앞으로 걷기 좋은 산책로가 나 있다. 또 하나의 뒤숭숭한 펜션 건물을 지나면 걷기 좋게 놓였던 길이 끝나고 좀 더 깊숙한 곳과 경계를 이루는 작은 문이 있다. 마을 공동 어장이라는 안내판과 파도가 높을 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 이 안쪽으로 거친 돌밭을 지나 들어가면 사진 포인트라는 굴을 찾을 수 있다. 저곳도 어쩌면 지뢰밭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은 파도가 높다. 평온을 추구하는 사람은 순수하게 미치는 짓도 평온 속에서 찾는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가 직진하다 배반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울산방향으로 간다. 외동읍에서 좌회전해 14번, 904번 도로(외남로)를 차례로 타고 양남으로 간다. 양남사거리에서 우회전해 동해안로를 따라 울산방향으로 가다 지경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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