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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5>청도군 금천면 임당1리

2023-10-25

고택과 어우러져 넉넉한 인심…협동심도 남달라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청도군 금천면 임당1리
'운림고택'의 전경. 운림고택은 '내시종택' '김씨고택' 등으로도 불린다. <인터넷뉴스부>
지난 13일 '경북 청도 금천면 임당1리' 곳곳에는 감나무가 심겨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임당1리는 까치산 아래 계곡에 형성된 마을이다. 동쪽 뒤는 산으로 막혀있고 서쪽에는 들이 펼쳐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마을 풍경과 잘 어울렸다. 마을에 있는 역사적 장소들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다.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리는 임당1리를 한 줄로 정리하면 '넉넉한 인심이 있는 마을'이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마을에 들어서자 감을 선물해주는 주민도 있었다. 또 "홍시나 감이 먹고 싶으면 주워가면 된다"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오니 좋다" 등 외지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을 초상 돕는 상포계도 이어져
400여년간 내시 가계 '운림고택'
궁궐쪽 북향에 배치 역사적 가치
흙담 따라 걷다 마주한 강림서당
왜병 격퇴 父子 기리는 임호서원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청도군 금천면 임당1리
박희상 임당1리 경로회장이 마을에 대해 설명 중이다.
◆임당1리 특징 '큰 마을' '협동 정신'

과거 임당1리는 450여 가구가 모여있는 매우 큰 마을이었다. 1972년에 문을 연 임호국민학교에는 한 학년에 반이 2개가 있었다. 해당 학교는 1995년까지 23년간 운영됐으며 졸업생 482명을 배출했다. 김남구(58) 임당1리 이장은 "1970년대까지는 온 마을이 사람들로 넘쳐났다"면서 "당시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으면 인구가 많다는 뜻이었다. 한 학년에 반이 2개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마을이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마을의 다른 특징은 '협동심'이다. 마을 주민 25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경로회 회원이다.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서로를 돕기 위한 '상포계' 등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박희상(78) 임당1리 경로회장은 "마을 평균 연령은 70대 이상으로 높지만, 협동 정신은 여전히 굳건하다"면서 "과거부터 마을 주민들 간 계모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청도군 금천면 임당1리
'강림서당' 내부 모습. 박후종 선생과 형제 2위를 추모하는 서당이다. 〈인터넷뉴스부>
◆운림고택

마을에는 특별한 가치와 역사가 있는 '운림고택'이 위치하고 있다. 해당 고택은 '내시종택' '김씨고택' 등으로도 불린다. 운림고택은 조선 후기 궁중 내시였던 김일준(金馹俊, 1863∼1945)이 19세기 후반에 지은 주택이다.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1988년에는 경북도 민속자료로, 2005년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됐다.

운림고택은 임진왜란 전부터 400여 년 동안 내시 가계(內侍 家系)가 이어져 온 곳이다. 해당 고택의 가계는 양자를 들이고 부인을 맞아들인 뒤 궁중으로 들여보내 내시 생활을 하도록 했다. 17대 김문선(1881~1953)에 이르러서 직첩(職牒,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만 받았을 뿐 내시 생활은 하지 않았다. 18대 이후부터 정상적인 부자(父子) 관계가 이뤄졌다. 해당 가문은 광복 이전 독립군에게 자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또 마을 하천인 '글방천 제방공사'를 주도하는 등 임당1리 발전에도 기여했다.

박 경로회장은 "운림고택은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큰 건물이다. 안채의 좌향이 궁궐이 있는 북향으로 배치돼 있는 등 공간 구성이 일반 백성의 살림집에서 볼 수 없는 구조"라면서 "대형 곳간이 2채나 있어 지난날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청도군 금천면 임당1리
임당1리 전경.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마을과 잘 어울렸다.

◆강림서당·임호서원

임당1리에는 역사가 담긴 장소들을 만날 수 있다. 운림고택에서 나와 흙담을 따라 걷다 보면 '강림서당'이 있다. 1872년에 지어진 '강림서당'의 당시 이름은 '강림재'다. 1984년 강림서당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강림서당은 조선 초 왜구 본거지인 대마도를 공격해 공을 세운 박위 장군의 12세손인 박후종 선생과 형제 2위를 추모하는 서당이다. 현재 강림서당은 후손 총회, 연례 제사 등 후손들의 정례행사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 입구 인근에는 '임호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임호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박경신(朴慶新, 1539~1594)과 쌍둥이 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20년에 지어졌다. 박경신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고향인 청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쳤다. 전쟁 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훈돼 임호서원에 배향됐다.

임호서원은 산형 대문(山形大門) 형태의 외삼문, 강당인 삼우정, 내삼문인 경의문, 사당인 경의사, 보물 전시각 경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 경의관에는 조선 시대 주요한 보물들이 보관되기도 했었다. 서원 정당 안쪽 윗단에는 경의사가 위치해 있다. 경의사는 박경신과 두 아들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12일 유림에서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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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영남일보 정지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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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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