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희 국회의원 (국민의힘) |
신은 해답의 힌트를 뜻밖의 가까운 곳에 감춰둔다고 했던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저출생 문제가 그렇지 않은가 싶다. 그간 수많은 해법과 조언이 제시됐지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것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 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9일 노벨상 수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저출생 문제의 해법은 '함께 육아'"라고 조언했다. 즉 일과 삶이 양립할 수 있도록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 등의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고, 남녀 임금 격차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부장 전통의 기성세대는 물론 기업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그의 충고가 오래 가슴에 남는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아빠와 엄마의 '함께 육아'는 쉽지 않다. 지난 10월10일 임산부의 날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에는 제도가 더욱 겉돌고 있었다. 골딘 교수의 지적이 아니어도 이는 평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문제다. 그래서 올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해서 물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특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남성들이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방안을 주문했다. 또 육아 기간에 쓸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제의 이용자 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도 촉구했다. 이뿐 아니라 싱글 맘, 싱글 대디, 청소년 부모와 같은 한부모가족을 위한 지원책도 여성가족부에 물었다. 24세 이하 청소년 한부모의 월 소득은 평균 160만원밖에 안 된다. 최저 생계비를 벌기에도 급급한 이들에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국가적 보호망을 더 촘촘히 짤 필요가 있다. 보육 문제는 저출생 문제와 직결돼 있다. 아이 키울 걱정이 없어야 마음 놓고 아기를 낳고, 경력 단절이나 승진에 대한 염려에서도 놓여날 수 있다. 젊은 엄마 아빠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섬세하게 그 마음을 읽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쳐야 저출생과 인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나의 쓰린 경험이 깔려 있기도 하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서 '독박 육아'를 하며 아이를 키웠다. 한번은 급히 외출해야 하는데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잠든 채 뉘어놓고 나갔는데, 돌아와 보니 그새 깨어 울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때 후배 세대에게는 이런 고통을 물려주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도움이 필요한 엄마 아빠들과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 위한 마음을 담아 아이돌봄 지원법 개정안 등 '돌봄플러스 3법'을 우선적으로 발의해 통과시켰다.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간절한 소원이다. 큰 자물통을 열기 위해 꼭 큰 열쇠가 필요한 건 아니다. 국가적 과제인 저출생 문제도 그렇다. 그간 숱한 논의와 제안이 있었지만 결국 합계출산율 0.78의 쇼크를 면치 못했다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게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해법을 크고 먼 데서만 찾으려 할 게 아니라 작고 가까운 것부터 다시 찬찬히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부터 눈치 안 보고 가게 만드는 것은 저출생 극복으로 가는 작고도 큰 걸음이다. 어쩌면 시시해 보일지도 모를 나의 이 말은 영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 교수의 말이기도 하다.
조은희 국회의원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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