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0104010000643

영남일보TV

[취재수첩] 그들도 산타가 필요하다

2024-01-08

[취재수첩] 그들도 산타가 필요하다

'사회부 기자'로 처음 취재를 한 곳은 쪽방촌이었다. 쭈뼛쭈뼛하던 내게, 한 쪽방 거주민은 선뜻 본인의 방을 보여주고 음료도 나눠줬다. 이른바 '사회적 취약계층'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갖던 막연한 선입견이 깨진 순간이기도 하다. 이후 우연히 길을 걷다 그와 다시 마주쳤을 땐 반갑게 인사도 나눴다. 오래 잊히지 않을 친절함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지역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열리는 성탄맞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일찍 나갔다. 초행길이라, 급식소 위치를 못 찾아 헤매던 중 어디선가 '헤이'라며 나를 멈춰 세웠다. 전혀 모르는 이의 반가운 인사에, 섬뜩 겁이 나기도 했다. "저를 아시나요"라는 물음에 그는 "지난번에 한번 봤는데?"라고 답했다.

덤덤하게 "그냥 밥 한 끼 하려고 왔다"는 그의 말에 성탄절이 갖는 특별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대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나는 그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쪽방촌, 다른 무료급식소 등 몇 곳을 되뇌었는데 쉽지 않았다. 스스로 사람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 자부했건만 기억할 수 없었다. 너무 반가운 인사 때문일까, 미안한 마음이 앞서 어디서 봤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무료급식소에서 성탄절을 보내는 노숙인, 쪽방 거주민들을 만날수록 그의 반가운 인사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곳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밥보다 사람하고 대화하고 싶어서 찾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보다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특별한 존재일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주변에 아무런 사람이 없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고립' '고독사' 등의 증가로 한국사회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 1인 가구 중 153만명을 '고독사 위험군'으로 추정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주변에 대화할 사람이 없는 것은 단순히 심심함·외로움 등을 느끼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남구 앞산에선 성탄 전야제가 열렸다. 산타 복장을 하고 가족, 연인, 친구 등과 사진을 찍는 이들로 가득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산타'가 돼 주는 모습은 성탄절 당일 찾은 무료급식소와는 전혀 달랐다.

'사회'는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 모인 단체라는 뜻이다. 혼자서 이룰 수 없는 것이 사회다. '사회부 기자'로서, 또 '사회 초년생'으로서, 올해는 무료급식소를 찾은 이들에게도 '산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박영민기자〈사회부〉

기자 이미지

박영민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