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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주말&여행] 경남 거창 봄의 계곡…속삭이는 물소리 춤추는 수양버들 '봄의 왈츠'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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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계정은 위천의 맑은 물에 꼬리를 담그고 거열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바위의 등 위에 올라서 있다. 산중턱의 건물은 장씨 재실이다.
감탄스러운 물소리다. 명랑하고 가볍고 피로를 모르는 물소리다. 찬연한 꽃들이다. 종달새처럼 땅에서 솟아올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꽃들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웃음이 분처럼 흩날린다. 참 웃음 헤픈 나날이다.

건계정 계곡 2㎞ 구간 벚나무 산책로
거창장씨 문중서 1905년에 정자 세워
병곡계곡은 옛날 보부상들 넘나들어
월성계곡 사선대, 의친왕 이야기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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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서 발원한 분계천 골짜기를 병곡 또는 빙기실 계곡이라 부른다. 길 따라 이어지는 수양벚꽃의 행렬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건계정 계곡

거창읍의 서쪽에 동산처럼 봉긋한 산이 거창의 진산이라는 건흥산이다. 꼭대기에는 과거 삼국이 치열하게 싸울 때 쌓았다는 거열산성이 있어 일대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덕유산의 여러 물줄기가 하나 된 위천이 마리면을 거쳐 거창읍 건흥산의 남쪽 아래를 흐르는데 그 천변에 건계정(建溪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정자를 중심으로 약 2㎞ 구간을 건계정 계곡이라 한다. 물길과 나란히 벚나무 산책로가 길고 지금 이 길은 벚꽃 천지다. 산자락에는 몇 그루 개살구나무가 분홍 꽃을 피웠고, 천변에는 노란 개나리가 한 움큼, 길섶에는 짙은 자주색의 꽃잔디가 군데군데 도드라진다. 일대는 최근에 정비되었는지 아직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계곡의 저 끝에는 거창읍의 아파트가 자글자글 모여 있다. 그들은 모두 발꿈치를 힘껏 치켜들고 부럽게, 그립게, 이곳을 바라보는 듯하다.

건계정은 벚나무 산책로의 상류에 위치한다. 목재 데크 산책로를 따라 물레방아를 지나 산길을 오르내리며 갈 수도 있고, 도로를 따라 올라가 건계정교를 건너 물가의 식당을 거쳐서 갈 수도 있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수양벚나무와 복사꽃을 헤쳐 열며 산책로를 따라간다. 물레방아의 홈통 아래를 통과한다. 나무바퀴를 돌리며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물이 계곡물과 투덕대는 소리가 한동안 요란하다. 산길은 가파른 편이지만 그리 길지 않다. 식당 입구에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거짓말 같은 모습으로 낙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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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계정을 중심으로 약 2㎞ 구간을 건계정 계곡이라 한다. 물길과 나란히 벚나무 산책로가 길고 지금 이 길은 벚꽃 천지다.
건계정은 거창장씨(居昌章氏) 문중에서 1905년에 세웠다. 고려 충렬왕 때 송나라에서 귀화한 시조 충헌공(忠獻公) 장종행(章宗行)과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벌하고 개성을 수복하는 공을 세워 아림군(娥林君, 거창의 옛 이름)에 봉해진 아들 장두민(章斗民)을 추모하는 정자다. 건계정이라는 이름은 독립 운동가 곽종석(郭鍾錫)이 지었다고 한다. 장씨는 중국 남당(南唐) 때 건주자사(建州刺史)를 지낸 장자조(章仔釣)를 시조로 하는데, 건계정의 건(建)자는 선조의 고향인 건주 땅을 잊지 말라는 의미라 한다.

건계정교를 건너 정자의 맞은편 천변으로 간다. 잔뜩 물오른 연둣빛 수양버드나무 아래에서 건계정을 바라본다. 정자는 맑은 물 위에 꼬리를 담그고 거열산성을 향해 기어오르는 거북바위의 등 위에 올라서 있다. 바위 면에 수많은 각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정자로부터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산중턱의 건물은 장씨 재실이다. 벼랑에 진달래가 반짝거린다. 수양 버드나무 아래 노란 산괴불주머니는 자울자울 졸고 있다. 다리 옆 벚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진다. 화르르 꽃비가 내린다. 꽃비 속에 하늘이 되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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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m에 자리한 병곡마을은 덕유산 아래 첫 마을이라 한다. 서쪽의 산수리 계곡과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 하여 병곡이라 하는데 훨씬 오래된 이름은 '빙기실'이다
◆병곡계곡

위천을 거슬러 간다. 수승대의 대단한 벚꽃을 지나 북상면 소재지의 소소한 벚꽃무리들도 지나 덕유산 자락으로 좀 더, 좀 더 가까이 달려간다. 그러다 홀린 듯 병곡길로 들어선다. 수양벚나무의 길이다. 수양벚나무의 분홍 꽃들로 몽롱한 길이다. 홀리어 투신하듯 달린다. 너무 흐드러진 것들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달려도 걷는 듯하고 걸어도 나는 듯하고 또 내 무릎이나 팔꿈치 따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의 초입부터 내내 많은 사람들이 걷는 듯, 나는 듯, 꽃 속을 배회하고 있다.

덕유산 동엽령에서 흘러내린 분계천과 남덕유산 삿갓골에서 흘러온 월성천이 농산리 농산교에서 만나 위천이 되는데 병곡길은 분계천과 함께 흐른다. 길 따라 천을 거슬러 병곡리 가곡마을, 장암마을, 시항마을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병곡마을이 자리한다. 해발 500m에 자리한 병곡마을은 덕유산 아래 첫 마을이라 한다. 서쪽의 산수리 계곡과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 하여 병곡(幷谷)이라 하는데 훨씬 오래된 이름은 '빙기실'이다. 그래서 분계천 골짜기를 병곡계곡 또는 빙기실 계곡이라고 부른다. 1천m가 훌쩍 넘는 동엽령은 예부터 전북 진안으로 통하는 영호남 사이의 큰 장삿길이었다. 동엽령을 넘나드는 보부상들은 빙기실 계곡을 오르내리며 빙기실 마을에서 쉬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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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계곡의 서출동류 물길 트레킹 길은 산수교에서 황점마을까지 5.9㎞의 길이다. 훌쩍 높은 벚나무 아래 트레킹 길이 보인다.
◆월성계곡

빙기실 마을 끝에서 병곡길은 산수병곡길이 되어 남향한다. 길은 산수리 중심마을을 지나면서 산수천과 함께 흘러 덕유월성길의 산수교 아래에서 월성천과 하나 된다. 월성천을 따라 형성된 5.5㎞의 계곡이 월성계곡이다. 월성(月星)이라는 이름은 계곡 상류에 위치한 월성마을에서 왔는데 마을 남쪽 월봉산(月峰山)의 옛 이름인 월성산(月星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농산교에서 출발하면 창선리 지나 산수교를 건너 월성리로 향하게 된다. 월성계곡은 거대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다. 사방으로 1천m가 넘는 봉우리의 연속이다. 수량은 풍부하고 화강암 바위와 벼랑을 끼고 도는 물길은 더없이 아름답다. 월성계곡 역시 분홍의 수양벚나무로 가득하다. 갓 오른 연둣빛 새순들 사이 하얀 벚꽃과 조팝꽃과 돌배나무 꽃도 늘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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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신선이 놀다갔다는 사선대. 의친왕은 사선대 일대를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 했었다고 한다.
월성천 물길은 서출동류(西出東流)한다. 서쪽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풍수에서는 명당의 한 요소로 여긴다. 월성계곡에 '서출동류 물길 트레킹 길'이 있다. 산수교에서 월성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 월성리 황점마을까지 5.9㎞의 길이다. 그 길에 훌쩍 솟구친 벚나무 오솔길도 있고, 고목의 솔숲도 있고, 월성마을 월성 숲도 있고, 제법 넉넉한 산골 분지의 밭도 있고, 네 명의 신선이 놀다 갔다는 사선대(四仙臺)도 있다. 황점마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선대에서 오래 머문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널브러진 평상들도 싫지 않다. 1909년, 의친왕 이강이 거창 위천면 출신의 전 승지 정태균을 찾아와 머물면서 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 했었다고 한다. 정태균은 1907년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 통치에 협력하여 다양한 직책을 맡고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사선대에 진달래가 피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꽃이 핀 것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모든 꽃 지는 시간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대구광주고속도로 거창IC로 나와 우회전해 직진, 회전교차로에서 1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중앙교사거리 회전교차로에서 9시 방향으로 나가 위천 따라 계속 직진한다. 절부사거리 회전교차로에서 12방향으로 나가자마자 오른쪽 거안로로 빠져나가 직진하면 산성교 앞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는 무료다. 건계정 산책로 끝 송정교 아래에도 주차공간이 있다. 절부사거리에서 거열교를 건너 거열산성 이정표를 따라가거나 거함대로에서 송정교 건너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거안로를 타고 계속 직진하다 마리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장풍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수승대를 스쳐 직진한다. 북상면소재지에서 좌회전해 37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농산교 지나 우회전해 들어가면 병곡계곡, 37번 지방도로 계속 직진하면 월성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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