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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마실 가듯 떠나요 '대구 앞산 고산골', 어디선가 '카앙~' 공룡 울음…놀란 잣나무는 쭈뼛쭈뼛

2024-04-26

공영주차장 옆 계곡 발자국 화석
1억년 전 활보한 초식공룡 흔적들
공룡공원 만들어져 아이들에 인기
트레킹 코스 걷다가 닿은 법장사
임란때 소실 고산사 터에 세워져
산불 후 가꾼 수만그루 잣나무숲
서늘한 기운 바람이 심상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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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산책로의 끝자락에 다다를 즈음 텃밭 너머 티라노사우루스가 보인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너무나도 청량한 빛깔의 메타세쿼이아에 눈길이 박힌다. 늘씬한 줄기와 뾰족뾰족한 우듬지의 열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수리가 시원해진다. 갑자기 무언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천천히 뒷목을 쭈뼛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공중에 있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얼굴과 마주친다. 하하 놀랐다.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어디선가 공룡 우는 소리 카앙- 카앙-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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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 계곡에 있는 공룡 발자국.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이곳을 활보하던 공룡이 남긴 것이다. 옆에는 물결무늬의 연흔과 퇴적층의 층리도 보인다.

◆공룡이 활보하던 골짜기

주차장 옆 계곡에서 공룡 발자국을 본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 이곳을 활보하던 공룡이 남긴 것이다. 조각류의 것이 4개, 용각류의 것이 7개, 모두 초식공룡의 것으로 추정된다. 옆에는 물결무늬의 연흔과 퇴적층의 층리도 보인다.

그때, 경상도 일대는 분지형 저지대였다.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들어 점차 드넓은 호수가 만들어졌고 주변으로는 많은 못과 늪지대가 생겨났다. 직경이 150㎞나 되는 호수는 경상도 전역은 물론 대한해협과 일본 본토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그 한가운데에 대구가 있었다. 날씨는 따뜻했고 초식 공룡의 먹이가 되는 나무고사리, 소철, 연한 순의 송백류 등이 풍부했다. 공룡과 다양한 동물들은 물과 먹이를 찾아 습지와 늪과 수풀로 우거진 호수를 활보했다. 육중한 걸음은 발자국을 남겼고, 발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건조한 기후를 맞았으며, 또 다른 퇴적물이 그 위를 덮었다. 그리고 약 7천만 년 전 화산폭발이 일어나 앞산이 생겼고, 2006년 고산골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2016년에는 공룡공원이 만들어졌다. 공룡공원 옆으로 메타세쿼이아길이 뻗어 있다. 넓은 흙길 양편으로 곧게 솟은 나무줄기 사이로 공룡과 사람들이 보이고 이따금 공룡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퍼진다.

공룡공원은 아이들이게 인기다. 공룡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아이들은 공룡 뼈가 숨겨져 있는 모래놀이터를 최고로 좋아한단다. 길가에 또 다른 화석지 안내판이 나타난다. 계곡 아래로 거북이 등껍질 같은 건열이 보인다. 건열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지표면이 마르면서 수축해 다각형의 무늬로 갈라진 것이다. 다각형 무늬가 흰 빛인 걸 보니 갈라진 틈 사이로 모래가 채워진 듯하다. 휙 스치는 오늘의 바람이 1억년 전의 바람 같다.

어린이 체험 학습장이 환하다.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이들 주변을 토끼가 어슬렁거린다. 살아있는 진짜 토끼다. 체험장 가장자리의 벤치에는 자전거를 타고 온 노인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메타세쿼이아길은 공룡공원에서 고산골 수덕사까지 900m 정도다. 수덕사 앞에 고산골 관리사무소와 앞산 등산코스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길은 토굴암 방향과 법장사 방향으로 나뉜다. 오늘의 목표는 법장사 지나 잣나무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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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고산사 터에 세워진 법장사. 석탑은 흩어져 있던 탑의 잔해를 모아 세웠다고 한다. 고산골은 고산사가 있던 골짜기다.

◆법장사 지나

시멘트 등산로다. 이 길에는 밤에도 불이 켜져 있어 야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성불사를 지난다. 등산로 옆으로 숲 트레킹 길이 시작된다. 굴암사를 지난다. 담벼락에 늘어선 무궁화가 이제 막 새잎을 내밀었다. 법장사에 닿는다. 일주문 편액에 '대덕산 법장사'라고 적혀 있다. 담장 위로 석탑이 높다. 신라 말엽에 대를 이을 왕자가 없어 근심이 큰 왕이 있었다고 한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서쪽으로 수백 리 되는 곳에 절을 짓고 정성을 들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왕은 절을 짓고 고산사라 했는데, 이듬해 왕비가 백일기도를 올리고 왕자를 낳자 왕은 크게 기뻐하여 고산사에 3층 석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후 고산사는 자식 없는 부녀자들의 기도처가 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61년 고산사 터에 세워진 절이 법장사다. 석탑은 흩어져 있던 탑의 잔해를 모아 세웠다고 한다. 고산골은 고산사가 있던 골짜기다.

법장사를 지나면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한다. 한 걸음이 천근이라 멈추고, 허리가 뻐근해 멈추고, 무릎이 시큰해 또 멈춘다. 멈추면 들꽃들이 보인다. 하늘하늘 연보랏빛 소래풀 꽃이 많다. 따뜻한 모퉁이에는 노란 뽀리뱅이, 긴긴 목을 빼 들고 작은 얼굴에 빛을 담는다.

야외무대를 지난다. 무대는 풀에 뒤덮여 있고 중앙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주인공처럼 서 있다. 객석은 푸른 이끼로 가득하다. 고대인이 물고기를 새겨 놓은 것 같은 커다란 바위를 지나 가침박달나무의 흰 꽃을 보고 나면 시멘트길과 트레킹길이 만난다. 그리고 곧 침목 계단이 있는 흙길이다. 저 위로 삼각의 지붕과 반짝거리는 거울 벽과 나무에 걸린 빨간 시계가 보인다. '물이 있는 쉼터'다. 맑은 물이 수조에 떨어지고 빨간 바가지가 동동 떠 있지만 음용에 부적합하다는 안내문이 있다. 빨간 시계는 시간이 맞지 않다. 삼각 지붕은 사각의 파고라에 비닐 벽을 두른 쉼터였다. 내부에 거울, 빗, 시계, 달력, 수건 따위가 걸려 있다. 주변에는 커다란 거울과 생각보다 많은 운동기구가 있다. 한 아저씨가 거울 앞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두 아주머니는 벤치에 앉아 다리쉼을 한다. 나를 앞질러 갔던 여자는 이곳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되돌아 내려간다. 그러고 보니 나를 추월해 간 남자는 내가 이곳에 닿기도 전에 다시 나를 스쳐 내려갔었다. 많은 사람이 이곳까지의 등산을 루틴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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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 잣나무 숲. 1983년에 대형 산불이 난 이후 24만㎡ 면적에 4만6천 그루의 잣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왼쪽). 트레킹 길에서 만난 폭포와 같은 계류. 트레킹 길은 자연에 폭 둘러싸여 있지만 시멘트길과 크게 떨어져 있지는 않다. 곳곳에 서로를 잇는 샛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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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골 잣나무 숲. 1983년에 대형 산불이 난 이후 24만㎡ 면적에 4만6천 그루의 잣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왼쪽). 트레킹 길에서 만난 폭포와 같은 계류. 트레킹 길은 자연에 폭 둘러싸여 있지만 시멘트길과 크게 떨어져 있지는 않다. 곳곳에 서로를 잇는 샛길도 있다.

◆잣나무 숲에서

돌 많은 산길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아 자꾸만 멈추게 되지만 아무도 없는 산길은 언제나 무섭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비목나무 앞에 긴급구조신고처 파-2 안내판이 있다. 두근두근 급한 걸음으로 10여 분쯤 흘렀을까, 잣나무 숲이 시작된다. 서늘하고 멋있다. 아니, 서늘해서 멋있나. 1983년에 대형 산불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24만㎡ 면적에 4만6천 그루의 잣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고 2002년에 2만 그루, 2015년에 1만1천 그루를 솎아 베었다고 한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 숲의 심장부로 나아가지 못하고 긴급구조신고처 파-3 근처만 왔다 갔다 하다 돌아선다.

하산 길은 트레킹길이다. 도도도도도 거의 뛰듯이 내려간다. 제법 날다람쥐 같은걸. 그래도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계류 앞에서 멈추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다시 시멘트 길을 만나고 유아숲체험장에 들어서고야 큰 숨을 내쉰다. 아이들이 놀다 간 오솔길에 분홍 진달래꽃과 노란 산괴불주머니와 연보랏빛 소래풀 꽃과 초록의 참나무 잎이 모여 있다. 검은 토끼가 벤치 아래 돌처럼 앉아 있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따라 맨발산책로로 들어선다. 고산골 집들이 보이고 텃밭 너머 티라노사우루스와 메타세쿼이아길이 보인다. 바람이 변덕스러웠던 봄, 한바탕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듯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앞산순환도로 동쪽 끝 상동교 서단에 공룡공원 이정표가 있다. 공룡공원 바로 앞에 고산골 공영주차장과 주차 빌딩이 있으며 최초 30분에 200원, 이후 10분마다 100원, 1일 주차는 2천원이다. 공룡공원까지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남구 국민체육센터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무료다. 공룡공원은 상시 개방이며 입장료는 없다. 저녁 8시 이후는 주차료도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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