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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무기를 내려놓으시오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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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914년 6월21일 여성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 베르타 폰 주트너가 타계했다. 그녀는 톨스토이가 "부디 당신의 작품으로 하여 지구상에 전쟁이 없어지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축원했던 명작 '무기를 내려놓으시오'를 남긴 소설가이기도 하다.

'무기를 내려놓으시오'는 실제로 일어났던 네 번의 전쟁, 즉 1859년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쟁, 1864년 프로이센·덴마크 전쟁,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무대로 삼은 서사이다.

주트너는 전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법만이 무의미하고 반인간적인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부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무기를 내려놓으시오'를 읽어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소설 본문 일부를 예시해 본다.

"널려 있는 시체들로 벽을 만들고, 그 벽에 몸을 감춘 채 적들과 총격전을 했지요. 살아 있는 한 나는 그 벽을 잊지 못할 겁니다. 벽돌 역할을 한 시체들 중에는 아직 살아서 팔을 꿈틀거리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전투 중의 전쟁터보다 전투가 끝난 뒤의 전쟁터가 더 끔찍하다. 천둥 같은 포격소리와 귀를 찢는 팡파르를 대신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죽어가는 이들의 거친 기침소리가 그 자리를 메웠다. 피로 가득 찬 웅덩이들이 곳곳에서 붉은빛을 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청년들에게 전쟁에 나가라면서 "개인보다 국가의 생명이 더 길고 중요하다. 개인들은 한 세대 지나면 사라지지만, 국가는 계속 발전해가면서 더욱 큰 명성과 위대함과 위력을 갖게 되니까!"라고 웅변을 토한다.

"전쟁의 성과를 가장 열렬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전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들입니다. 교수들, 정치가들, 술집에서 정치 얘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그야말로 노인들의 합창이지요."

주트너는 살아 있을 때 세계대전 발발 위험성을 계속 경고했다. 그녀의 타계 이후 불과 한 달 뒤인 7월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 꼴' 안 보고 이승을 떠난 것이 그녀에게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으리라.

평화를 추구해 국제연맹이 창립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또 일어났다. 6·25도 일어났다. 문무왕은 무장사 터에 무기를 묻고, 주트너는 '무기를 내려놓으시오'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인간소외의 가장 극단인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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