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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주말&여행] 쉬엄쉬엄 마실 가듯 떠나요 '대구 수성구 내관지 길'

2024-07-05

푸른 숲길 따라 계곡 물소리·새소리…"여기가 대구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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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길에 서면 환한 하늘과 맑은 물, 그리고 모래시계처럼 잘록한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찬다. 취수탑과 도탑교, 수상 데크길은 202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몇 대의 차가 서 있었지만 주차장은 텅 빈 듯했다. 평일의 대구스타디움 일대는 모든 소리가 소거된 듯 고요했고 도로는 넓고 한산했으며 큼직한 건물들은 조그맣게 느껴졌다. 바짝 다가와 선 육중한 초록의 덩어리들은 주변을 작고 사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차장 모서리에 작은 매점이 있다. 덥고 좁고 어둑한 매점 안에 한 사람이 있고, 문득 영화 아비정전이 떠올랐다. 바람 한 점 없이 뜨거운 날, 기다리는 여자는 모두 수리진을 닮았다. 스파이더맨처럼 차려입은 자전거 탄 남자가 매점으로부터 뚝 떨어진 벤치에 앉는다. 나는 모두로부터 저만치 멀어지며 일부러 길을 인도하려 그려놓은 듯한 횡단보도를 건넌다. 눈앞에 '생각을 담는 길'이라는 빨간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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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숲체험원 옆으로 대덕산을 오르는 벚나무 길이 시작된다. 빛과 그림자로 짜인 레이스 같은 길이다.

◆생각을 담는 길, 내관지 길

'생각을 담는 길'은 대구 수성구에서 조성한 둘레길 이름이다. 수성구 고산 지역의 금호강과 지산범물 지역의 진밭골을 잇는 길로 총 6개의 코스가 있다. 그중 5코스가 약 6.5㎞의 '내관지 길'로 대구미술관에서 출발해 대구스타디움, 망월지, 유아숲체험원, 내관지, 유건산 전망시설, 청계사, 솔밭정 전망터까지 이어진다. 등산을 해야 하고 왕복거리가 상당해 코스 난이도는 '상'이다. 보통 소소하게 대구스타디움 보조경기장 주차장 근처에서 시작해 내관지와 청계사까지 약 2㎞ 길을 걷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주차장 맞은편에 '생각을 담는 길'이라는 빨간 문이 있다. 꼭 저 문을 통과해야 할 것 같은 강력한 빨강이다. 유건산 자락의 끝단을 사뿐 밟고 가는 온화한 초록의 길은 도로와 한 뼘 거리로 나란하지만 자연에 은거한 자의 일상적인 산책처럼 밀도 있게 느긋하다. 이파리들 사이로 론볼 경기장의 휠체어들이 보인다. 인공 암벽 등반장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사람들이 온갖 포즈로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그리고 금세 숲길이 열리면서 유아숲체험원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대덕산을 오르는 벚나무 길이 시작된다. 빛과 그림자로 짜인 레이스 같은 길이다. 벚나무 아래에 펼쳐진 데크길에는 서둘러 떨어져 내린 잎들이 분분하고 도로가 옹벽에는 푸른 이끼들이 가득해 세상은 몹시 그윽하다. 데크길 옆으로 점점 깊어지는 골짜기를 느끼며 상승하는 사이 저수지의 커다란 둑 사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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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지 둑길에 서면 가깝게는 장애인국민체육센터, 멀리로는 팔공산까지 조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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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데크길에는 작은 의자가 하나 놓인 전망쉼터가 있다. 의자에 앉으면 난간 위에 올라앉은 '생각하는 사람'의 등을 보게 된다.

◆내관지

저수지는 길 이름의 주인공인 '내관지'다. 저수지 산책 데크 길 입구에 '內串池'라 한자로 새겨진 오석이 놓여 있다. 처음에는 '내곶지'라 읽었다. 오석의 뒷면에는 '내환지 설치공사 착공 1998. 1. 9. 준공 2000. 5. 1'이라 새겨져 있다. 내관, 내곶, 내환, 이러면 예민해진다. 대략 알아보니 이렇다. '串'은 곶, 관, 천, 찬 등으로 읽는다. '관'의 본음이 '환'이고 '곶'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인다고 한다. 대구스타디움 일대는 대흥동으로 이전에는 내환동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 이름을 내곶(內串)이라 하였는데 내환(內患)으로 잘못 쓴 것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러다 2001년에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바뀐 이름이 대흥(大興)이다. 내관, 내환, 내곶, 연유는 알겠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이 분분한 사정들이 벚나무 이파리처럼 그윽하다면 좋았을 텐데.


대구미술관~청계사~솔밭정 전망터 6.5㎞
수성구 조성 '생각을 담는 길' 5코스 해당
'내관지' 둑길 서면 골짜기·팔공산 한눈에
저수지 취수탑 정자로 만들고 데크길 조성
청계사 계곡 곳곳 시민들 모여 더위 식혀



취수탑으로 향하는 도탑교 양쪽으로 모서리를 깎아낸 직사각의 나무기둥들이 촘촘하게 도열돼 있다. 그 긴 도열 앞 벤치에 앉으면 나무기둥들 사이로 내관지가 보인다. 이파리들 사이로 론볼 경기장이 보이듯. 울타리는 대개 '높이'와 '면'과 '너머'로 인식되는데 도탑교의 울타리는 '공간'과 '틈'과 '연결'로 느껴진다. 취수탑은 벽을 걷어내고 정자가 되었다. 도탑교의 울타리가 취수정의 난간으로 이어진다. 머리카락이 휘날리지도 않는데 바람 소리가 난다. 난간의 틈을 가득 채우며 잉글리시 호른 소리가 난다. 천장은 윤슬로 일렁이고, 그 아래에 두 사람이 다리를 뻗고 앉아 잉글리시호른 소리에 기대어 있다.

도탑교는 내관지 서편의 수상 데크길과 연결되고 둑길은 동편의 임도와 연결된다. 둘은 남쪽의 계곡에서 만난다. 내관지를 두르는 환형의 길이 나 있는 것이다. 둑길에 서면 환한 하늘과 맑은 물 그리고 모래시계처럼 잘록한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찬다. 뒤돌아서면 멀리 팔공산까지 보인다. 임도는 키 큰 잎나무들의 터널이다. 차를 댈 만한 작은 공간들이 있고 소설 같은 이끼정원이 숨어 있다. 수상 데크길에는 작은 의자가 하나 놓인 전망쉼터가 있다. 의자에 앉으면 난간 위에 올라앉은 '생각하는 사람'의 등을 보게 된다. 그의 무거운 머리 아래에는 물속에서부터 솟아오른 뾰족한 삼각의 조형물이 있다. 그는 어쩌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는 '태산'을 생각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계곡을 바라보는 쉼터에 한 사람이 세상 편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여기서 청계사(淸溪寺)로 가는 임도와 숲길이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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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사는 내관지만큼이나 넓고 환한 땅에 자리하고 있다. 경 읽는 소리, 목탁 소리 하나 없이 '또르르'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절집이다.

◆청계사 계곡

온통 푸른 숲길이다. 계곡물소리 끝없는 이끼 계곡에 희고 노란 나비들이 어릿어릿 찬란하다. 골짜기의 원래 이름은 심천골이라 하고 사람들은 청계사 계곡이라고 부른다. 이 계곡물은 내관지가 되었다가 매호천이 되고 남천이 되고 금호강이 된다. 물가 평평한 자리마다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오래된 익숙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댄 여섯 여인들은 무엇을 하는 걸까.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녀들이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의 계곡길이 끝나면 다시 임도와 숲길로 나뉜다. 이정표는 있지만 거리표기는 없다. 돌아올 때 알았지만 임도는 짧고 숲길은 아주 길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숲길이다. 숲이 우거져 물소리만이 계곡이 가까이 함께 있음을 알려준다. 누군가 채집해 틀어놓은 것만 같은 새소리는 어찌 이리도 다채롭고 선명한지. 그러나 물소리와 새소리만 있는 길이 얼마나 긴지 모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른 아침 뱃살을 보며 청계사까지를 결심했건만 뱃살이 있어야 허리가 굽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백번쯤 꿍얼대고 나서야 마침내 청계사 대웅전의 지붕과 석탑이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청계사는 내관지만큼이나 넓고 환한 땅에 자리하고 있다. 경내의 가장자리마다 관세음보살과 갓바위 형상의 약사여래불과 마애불이 앉아 계시고 물이 흘러넘치는 수조 곁에는 할아버지들이 앉아 계신다. 경 읽는 소리, 목탁 소리 하나 없이 '또르르'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절집이다. 임도를 내려와 다시 숲길을 거쳐 내관지에 닿는다. 계곡을 향해 앉아 책 읽던 사람은 세상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스타디움 보조경기장 주차장에서 '생각을 담는 길'의 빨간 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산한 날이면 내관지 초입, 임도 갓길, 숲길 입구 등에 주차도 가능하다. 청계사 방문객 외에는 대구스타디움 주차장을 이용하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청계사까지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청계사 계곡은 여름 피서지로 인기가 높으며 돗자리와 간이 의자, 간식 등을 싸오는 이들이 많다. 매점에는 음료수와 과자, 라면 등이 있는데 얼음 가득한 아이스티가 3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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