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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오동잎 한 잎 두 잎

2024-07-18

이선경
이선경 (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올해 6월,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노래교실을 열게 되었다. 이름하여 금빛노래교실! 금요일이 빛나는 노래교실을 수강하시는 학생선생님(?)들이 좋아하는 노래 모두를 망라한 덕분에 수업 준비를 위해 가곡뿐만 아니라 흘러간 옛 가요를 자주 찾아보게 되었다. 며칠 전, 알고리즘이 갑자기 가져다준 그 노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일곱 살 그 시절로 나를 단번에 데려갔다.

제 시간에 늘 퇴근하시던 아버지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늦으셨는데 그날마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하얀 접시를 쥐여 주시며 '비행기집' 심부름을 시키셨다. 옆으로 드르륵 여닫는 낡은 출입문에 공군비행기 그림이 있어서였는지 간판도 없는 그 집을 모두 그렇게 불렀다. 비행기집 주인아줌마는 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연탄불에 석쇠를 탁탁 두드리며 불고기를 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촐촐한 퇴근길에 외면하기엔 얼마나 가혹한 냄새였을까?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자전거를 밟아 집으로 향하셨던 우리 아버지도 봉급날만큼은 지나치기 어려우셨을 거다.

아버지는 그날도 비행기집 출입문 바로 앞 동그란 양은 테이블에 늘 뵙던 아저씨 몇 분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는데 내가 가져간 접시를 아줌마에게 맡기시면서 애들 먹을 거니까 잘 좀 구워달라 당부하셨다. 고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아버지는 드시던 불고기 안주를 나와 동생 입에 몇 점 넣어 주셨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나는 아직 그보다 맛있는 불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따뜻하게 담긴 고기접시를 내 손에 쥐여 주시면서 동생이랑 조심히 잘 들고 가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빨리 먹고픈 맘에 달려가다 그만 돌부리에 후다닥 넘어졌다. 청석돌에 까진 내 무릎보다 반쯤 엎질러진 불고기가 더 아팠다.

저녁을 먹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버지께서 안 오시는 거다. 곧 오실 거라는 엄마 만류에도 아버지 껌딱지였던 나는 다시 비행기집엘 갔다. "아이고야, 우리 경이 다시 왔네" 하곤 나를 무릎에 앉히시면서 얼굴 비비시던 아버지 거친 턱수염이랑 그날의 비행기집의 갖가지 냄새와 소리까지 모두 선명하다.

쑥스러움이 많으신 아버지는 그날도 크지 않은 목소리로 젓가락 장단에 맞춰 아저씨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계셨는데 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최헌의 히트작 '오동잎'이라는 노래였다. 하도 많이 들어 어린 나도 다 외우던 노래였는데 아저씨들이 자꾸만 노래를 이상하게 부르시는 거다. "오동잎 한 잎 두 잎~" 하고서 한마디를 쉬어야 하는데 이를 못 기다리고서 박자에 안 맞게 다음 소절을 바로 들어왔다. 이를 참다못해 아저씨들의 노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손사래 치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소리를 쳤는데 아저씨들은 그저 웃기만 하셨고 아버지는 어른들 앞에서 큰소리 내는 거 아니라고 혼내시는 바람에 무안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결국 아버지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그 노래를 다시 불러주셨다. 우리 아버지는 박자 하나 안 틀리게 잘만 부르셨다. 그제야 속이 시원했던 그날의 기억은 한 잎 두 잎 오동잎처럼 그대로 쌓여 있었다.

노래를 함께했던 사람들은 곁에 없지만 노래에 고스란히 남은 시간의 흔적들 덕분에 한 소절 노랫가락에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련한 추억이 얹혀 더 그립고 더 시리다. 내가 무심코 부르는 노랫가락에도 나의 딸들은 시간의 흔적을 한 잎 두 잎 주워 담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춘기 막내딸의 '내 맘의 강물' 콧노래가 그냥 저절로 나온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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