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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형식의 길] 강정 간다

2024-07-24

[길형식의 길] 강정 간다
길형식 거리활동가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 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간다. 울적한 직할시 변두리와 숨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 잡고 늙은 가장은 3번 버스를 탄다" 시인 장정일의 '강정 간다'란 시의 첫 구절이다.

20세기 문제적 시인 장정일은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혹자는 '강정'을 한때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제주도 서귀포의 '강정'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달성군 출신의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대구의 '강정 유원지'를 뜻한다. 참고로 대구를 배경으로 하는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도 '강정'이 등장한다.

강정(江亭)은 성주군 다사읍 죽곡리 일대의 옛 지명이다. 1914년 죽곡동과 강정동이 통폐합되며 오늘날 죽곡리가 되었다. 강정은 강가에 있는 정자란 의미로, 인근에는 조선시대 정자인 부강정(浮江亭)이 있었다. 그 당시 지역 선비들은 이곳에서 뱃놀이로 풍류를 즐기며, 강안문학(江岸文學)의 전성기를 꽃피웠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인 강정은 예로부터 강정 나루터가 존재했는데 조선시대 대표 내륙도시이자 포구 도시였던 대구에서 강정 나루는 사람과 물건이 오고 가는 물류 중심지였다. 하지만 강창교가 설치되며 그 설 자리를 잃고 강정 나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상수원 취수지, 유원지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던 강정은 2010년대에 들어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강정보와 디아크가 건설되며 새로운 물결을 열었다. 하천의 수량을 조절하는 보의 기능은 물론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대구 12경에 선정되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지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이제는 달성군을 넘어 대구를 대표하는, 낙동강 사업 강문화 중심지의 핵심이자 신(新)랜드마크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장정일의 시가 발표된 지가 올해로 꼭 40년째다. 시가 쓰였을 당시와 비교해서, 광역시 외곽의 유원지는 천지개벽 수준은 아니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강정유원지가 있던 곳은 명실공히 대구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했고,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주일, 주말 할 것 없이, 남녀노소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으로 들끓는다. 시인은 과연 지금 강정의 모습을 예상했을까? 문득 그의 소회가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간다.
길형식 거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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