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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아닌 것도 들으시네요?"
가끔씩 놀라며 반문하시는 분들을 만난다. 사실 나를 음악세계로 불러온 음악은 '팝'이다. 휘트니 휴스턴에 풍덩 빠져 그녀의 음반 속 노래를 한 곡도 빼놓지 않고 외워 불렀고 어쩌다 미국방송(AFKN)에서 그녀를 만나면 번개보다 더 빠르게 비디오 녹화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줄이 생기고 사운드가 울렁거릴 때까지 보고 또 봤다. 어느 날인가 레코드 가게에 LP 옆자리에 CD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비인간적(?) 창법을 구사하는 머라이어 캐리를 음반으로 만났다. 영화 '미녀와 야수' 주제곡을 부른 셀린 디온이라는 가수도 만났다.
돌아보면 이들을 가장 정점으로 이르게 한 음악은 바로 영화음악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이 직접 출연한 영화 '보디가드'는 뻔한 줄거리였음에도 주제곡 'I will always love you' 덕분에 큰 흥행을 했고 영화 '타이타닉'의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디온을 세계 최고의 디바로 만든 데다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남겼다.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 역시 수많은 영화의 배경음악이 되었는데 영화가 살린 음악인지 음악이 살린 영화인지 그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영화 속에서 음악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60년, 최초의 클래식 음악영화 '길은 멀어도'를 제작하기 위해 감독 홍성기는 영화 속 클래식음악을 맡을 작곡가를 찾아 다녔다. 김지미, 최무룡 등 당시 최고의 배우를 섭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음악을 대중음악이라 여기던 때라 콧대 높은 클래식 음악가들 어느 누구도 직접 나서지를 않았다. 사방을 찾아 헤매던 홍 감독은 서라벌예술대학의 교수 '김동진'을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데 후일 김동진은 한국전쟁 이전 평양에 있을 당시 소련작곡가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등 유명한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에서 많이 활약하는 것을 보아서 한번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김동진은 이 영화에 지휘자 배역으로도 직접 출연했다. 이 영화 주제곡을 작곡하고 소프라노와 함께 직접 부르고 녹음도 하였는데 바로 이 곡이 한국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다. 당시 노래한 소프라노 박옥련씨는 콧수염 성악가로도 유명한 바리톤 김동규씨의 모친이다.
작곡가 김동진은 작곡, 특히 가곡에 탁월한 실력을 보인다. 가곡 '봄이 오면'을 10대에 작곡했고 스무 살에 '가고파'를 작곡했다. 만주에 머물던 30대 시절에는 '수선화'와 '내 마음'을 작곡했다. 노래에도 상당한 실력을 겸비하였고 피아노에도 능숙한 데다 일본 유학시절 바이올린까지 전공한 덕분에 김동진은 일생동안 수많은 명가곡들을 남겼다. 가곡 '목련화'는 김동진이 마지막으로 재직했던 경희대에서 개교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위촉받아 작곡한 곡이었다. 경희대 초대 총장 조영식이 직접 시를 썼으며 최초의 가곡 뮤직비디오 주인공, 성악가 엄정행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곡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김동진은 특유의 북한 말투 때문에 월남 이후 정착에 매우 힘들었다고 하는데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96년의 세월을 굳건히 지탱하고 수많은 명곡을 남긴 것은 그의 천재적 음악재능 덕분이 아닐까? '저 구름 흘러가는 곳 …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수요일 입추도 지나고 하루하루 높아지는 하늘에 2024년의 여름도 이제 조금씩 흘러간다.
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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