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
지금은 돌아가신 김용환 전 재무장관을 박근혜 정부 시절 만나 뵌 적이 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명재상이었던 그는 17대 대선과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 원로 자문단인 '7인회' 멤버에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첫 조각(組閣) 당시 경제부총리 후보로 재무부 관료 출신인 C씨를 천거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이러려고 저를 지지하셨나요?"라는 싸늘한 반응뿐이었다. 이 실화(實話)는 당시 정계에서는 꽤 회자되던 이야기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경건해야 할 8·15 광복절 행사를 파탄 낸 이종찬 광복회장은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아버님'이라고 부른다는 그는 "대통령에게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인사에 제동을 걸기 위해 윤 대통령에게 세 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답변 없이 그대로 발령내는 것을 보고 격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이회장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잘한 일이다. 대통령실이 "인사에 관한 사항이라 답변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해명했듯이, 누구를 임명하라 마라는 요구에 대해 대통령이 사전(事前)에 뭐라고 언급할 것인가. 정부 내 공적인 절차가 아니라 사적인 친분을 통한 인사 개입은 더더욱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회장의 여러 발언 중에는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 선을 넘는 무례함도 엿보인다.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모욕감' 운운하는 대목에선 대통령을 아직도 아들의 친구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한마디로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식이 느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살 위 삼촌뻘인 김용환 장관에게 야멸차게 대한 것은 선거 공신들이 함부로 인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뜻이 담겨 있었으리라. 윤 대통령이 무대응을 택한 것은 친구 아버님이든, 국가 원로이든 이회장을 나름 배려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정진석 비서실장을 통해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국가보훈부 장관을 직접 보내 이 회장의 경축식 참석을 설득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결국 8·15 경축식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 회장의 소동을 생각한다면 당시 윤 대통령은 이 회장의 인사개입 시도에 대해 불호령을 내렸어야 옳다.
이미 보도된 대로 이 회장의 아들인 이철우 교수는 윤 대통령과 대광초, 서울법대를 함께 다닌 57년 죽마고우로, 대선캠프에서 한 역할을 맡아 윤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다고 한다. 이후 윤 대통령 취임 후 이 교수의 부인이자 이회장의 며느리는 차관급인 질병관리청장에 임명된다.
이 회장이 대통령인사의 공정성을 말하려면 이 인사야말로 거부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윤대통령 인사를 정실 인사, 측근 인사로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전후 세대 중 처음으로 당선된 윤 대통령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발호(跋扈)라는 말이 나온다. 외척이 전횡을 일삼자 황제가 "이분이 발호 장군이시군"이라고 한데서 유래됐다.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독립운동가의 가문에서 태어나 박정희-전두환-김대중 시절 안기부와 민정당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이종찬은 이제 그만 자숙하기를 바란다.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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