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변호사 |
코로나 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게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3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있었다. 노래방이나 주점에서 3인 이상 손님이 모이면 업주도 감염병예방법 위반죄로 처벌받았다. 어느 날 감염병예방법 위반죄로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을 국선으로 변호하게 되었다. 나의 피고인은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60대 여성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절 제한된 영업시간 이후에 3인 이상에게 술을 팔았다. 당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도 늘고 있었고 많은 국민이 불편함과 경제난을 감수하면서 코로나가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명백하게 법을 위반한 그녀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법이 너무하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녀의 태도는 적반하장으로 보였다.
그녀의 사정을 듣고 보니 속상해할 만은 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도 장사는 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과금을 내고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는 손님이 하루에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단전·단수 예고 통지까지 받고 각종 독촉장을 받으며 극단적인 빈곤에 몰려 있던 어느 날 손님들이 찾아온 것이다. 재판을 마칠 무렵 피고인의 최후진술 시간이 되었다. 그녀가 갑자기 머리에 손을 올렸다. 똑딱 핀을 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발을 벗었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이나 될까 싶게 머리카락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녀가 가발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나와 법정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모두 놀랐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들어서 머리카락도 다 빠져 버렸어요…"
그녀가 가발을 손에 쥐고 아이처럼 울자 그녀가 살아 있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녀의 일상이 보이는 듯했고 건물 하나가 내 가슴에 박히듯 들어왔다.
하루는 버스를 타서 앉으려고 좌석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나보다 늦게 버스에 올라탄 사람이 내가 좌석에 앉으려는 순간 휙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마치 그 좌석이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나는 자리에 집착한 그가 얄미웠다. 나도 앉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가 앉은 좌석 옆에 서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무슨 서류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나도 우연히 그 서류에 눈길이 닿아 몇 글자를 읽고 말았다. '개인회생'. 그는 나와 법원 앞에서 함께 버스를 탔지만 우리는 다른 이유로 법원에 다녀온 것이다. 그는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그래도 살아내기 위해 개인회생을 신청했을 것이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법원 복도에 서서 변호사의 설명을 들었을 것이고 종일 피곤하고 긴장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개인회생'이라는 글자를 보자 그가 보냈을 하루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일상은 좀 더 복잡하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가 그 좌석에 앉은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우리 모두의 등에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이름표로 붙인다면 우리는 좀 더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등에 '며칠 전 어머니를 잃은 사람' 혹은 '암 투병 중'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면 그가 내 앞에서 새치기를 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위로가 필요한지 모른다.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조금 더 힘이 필요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서로를 잘 알지 못할지라도 조금씩 보듬어 주면서 살 필요가 있다.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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