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
15년 전쯤이다.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관람했을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다. TV를 통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뮤지컬 영화의 고전을 간간이 본 적 있지만 뮤지컬 공연을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무대 가까이서 거친 숨소리 섞인 배우들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팬들이 왜 전국을 돌아다니며 'n차 관람'을 하는지 절로 이해가 됐다. 특히 노트르담 드 파리가 도입부에서 보여준 현란한 조명 테크닉은 '벨(Belle)' 등 주옥같은 넘버(곡)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후 '시카고' '맘마미아' 등의 유명 뮤지컬을 관람했지만, 취향의 차이인지 노트르담 드 파리가 안겨준 감동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난 8월15일 경북 안동 탈춤공원 야외 특설무대에서는 뮤지컬 왕의나라 시즌3 '나는 독립군이다'가 초연됐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제작되고 해당 도시에서만 소비되는 뮤지컬이 뭐 그리 대단할까. 솔직히 의심 반, 걱정 반 심정으로 객석에 앉았다. 하지만 공연 시작과 함께 펼쳐진 3D 비디오 매핑은 노트르담 드 파리가 안겨준 감동의 기억을 소환해야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길이 54m의 전통한옥 회랑(回廊)에 정교하게 입혀진 영상은 스펙터클했고 박진감 넘쳤으며 극적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번 비디오 매핑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프랑스 라메종프로덕션의 세바스티앙 살바냑이 연출했다. 앞서 그는 사석에서 자신이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제작에 참여한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15년 만의 감동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나는 독립군이다'에서는 총 25곡의 넘버가 선보였다. 작곡가 7명이 참여해 때로는 애달픈, 때로는 흥겨운 선율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일부 곡은 대중적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감각적으로 들렸다. 욱일기를 격파하는 태권도 퍼포먼스 또한 인상 깊었다. 스케일을 더 키운다면 또 다른 킬링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됐다. 둘째날부터 등장한 대형 태극기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려는 연출 의도가 읽혔다. 무엇보다도 독립운동의 발상지이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안동의 저항정신을 되새겼다는 점에서 안동시민의 가슴에 오래 기억될 작품으로 보인다.
이번 뮤지컬이 주목받는 데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관과도 무관치 않다. '일제강점기 때 나라 잃었는가'라는 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4분의 1이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하는 나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안보실 관리를 둔 나라,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말하는 자가 장관이 되고 독립기념관장이 되는 나라, 김구를 테러의 수괴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되는 나라…. 1910년 6월22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土倭天地)'가 100년 만에 재현되기라도 한 걸까. '밀정의 그림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광복회장의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는 불의에 저항하고 대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DNA가 있다. 그것은 선비정신에서 투사정신으로 이어졌다. 갑오의병(1894) 이후 광복(1945)이 되기까지 암울한 시대 외로이 대한독립을 외쳤던 이름 모를 수많은 영웅들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 이번 뮤지컬은 바로 그 안동의 정신을 노래한 것이다. 안동인들은 안동인임을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내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좀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나는 독립군이다'를 안동뿐 아니라 전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변종현 경북본사 본부장
변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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