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속 도시민들 구할
생태방벽으로 도시녹지를
어떻게 늘릴건가 고민해야
기후변화가 재난되는 현실
그린벨트 가치 강조 필요성
이하석 시인 |
#더위
내가 사는 분지 도시는 더위로 이름이 나 '대프리카'라고 불리기도 한다. 8월 낮 최고기온이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1위의 '위용'을 올해도 떨쳤다. 33℃ 이상인 폭염일수가 40여 일 계속되고 있다. 9월로 접어든 지금도 누그러지지 않는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중순 동해안을 따라 울진을 거쳐 강원도까지 올라가 보았다. 맹더위에 그늘 속도 후끈했다. 더위 때문인지 해수욕객도 많지 않았다. 그렇듯, 한반도 전체가 찜통이었다. 온열질환자가 3천 명에 이르고, 그중 수십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기후 우울 현상이 생길 만하다.
기후의 이상적 징후는 더욱더 극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너무 뜨겁거나, 물 폭탄이 잦다. 전 세계가 가뭄과 홍수로 고통을 받는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간다. 지중해의 해수면 온도가 올해 최고치를 찍었다는 뉴스도 듣는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고기들이 집단 폐사해 어장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기후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된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저녁 무렵 계곡의 바람기가 내려오는 신천변을 산책하면서 열대야를 피해 보려 하지만, 조금만 걸어도 귀 뒤와 목덜미에는 비 오듯 땀이 흐른다. 더위를 피해 카페나 공공건물의 쉼터를 기웃거리며, 견디기 힘든 올여름을 보냈다. 며칠 전 동해를 다시 돌았는데, 마침 태풍 산산이 일본열도에 상륙하는 때라 그 여파로 맹렬한 바람이 불었다. 바닷가에는 모래와 운무가 뿌옇게 날렸다. 파도가 거셌다. 오랜만에 만난 강풍이 반갑기는커녕,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더운 기운으로 더 불쾌했다.
#늑대
이런 더위에 자연과의 조우는 한층 더 강렬하게 여겨지나보다.
더운 데다 가뭄 상태가 길어 산짐승들이 자주 산을 내려와 물가를 찾는다. 시골 가까운 도시 변두리에 살면 이따금 맞닥뜨리는 게 산짐승들인데, 올여름은 유난히 그런 일이 잦다. 며칠 전에는 낮인데도 산기슭 길가에서 너구리를 만났다. 너구리는 이내 길가를 따라 달아나는데, 내 차가 슬슬 따라가자 돌아보곤 또 돌아보곤 하다가 산비탈 풀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느 저녁엔 산 밑 모롱이를 돌 때 쿵 하는 소리에 차를 멈추었다. 고라니였다. 길 가 풀덤불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내 차와 부딪친 것이다. 차를 세우니, 비실비실 일어나선 이내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이었다. 속도를 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다칠 뻔했다.
신천 상류의 산책길엔 산책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오가도 산짐승들이 용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물을 마신다. 어느 저녁에는 나의 기척에 길가 풀숲에 숨은 토끼를 보았다. 귀가 풀숲 위로 솟아 까닥대고 있었다. 서서 한참을 살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살피는 듯했다. 내가 도리어 조심스레 그 자리를 떠나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한편, 여름의 막바지는 다큐멘터리를 줄곧 보면서 더위를 잊으려 애쓴 듯하다.
EBS 주최 국제다큐영화제(EIDF 2024)가 8월19일~25일까지 개최됐다. 이 기간 EBS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큐멘터리들 가운데 선정한 53편을 연속적으로 방영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인 게 자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들이었다. '스라소니 맨' '늑대와 함께' 등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중 '늑대와 함께(Among The Wolves)'가 압권이었다. 벨기에의 탕기 뒤모르티에와 올리비아 라레가 감독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사람의 접근이 드문 오지의 겨울 풍경이 강하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핀란드와 러시아의 비무장지대 어딘가가 무대다. 이곳은 늑대의 영역. 화가 이브와 사진가 올리비에가 오두막에서 숨을 죽인 채 야생 늑대 무리를 기다린다. 둘은 카메라와 그림으로 고요한 시간의 풍경을 기록한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늑대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그들은 어느덧 사진과 그림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어느 날 꿈처럼 늑대 무리가 나타난다. 그 무리 속의 늑대들 하나하나의 표정을 그리고, 이름을 짓자 비로소 모호했던 풍경은 구체적인 이야기로 살아난다. 인내와 고요에 몸을 맡긴 채 이 기적의 경험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자연
그렇다. 자연과의 조우는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기다리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드러내어선 제대로 만나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과 동행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이 다큐멘터리는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우리 지구의 미래에 대한 절실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 파괴가 곳곳에서 자행되면서 자연 생태계뿐만 아니라 지구인들은 점점 더 숨이 막혀온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의 삼림들이 농경지로 개발되면서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는 게 그 예다. 세계 각국은 2015년 파리협정에서 1.5℃의 상승을 막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올여름의 맹더위도 그런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8월8일 정부는 서울과 인근 지역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주택 8만 호 규모의 택지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미래 세대의 주거 마련'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라는 '피치 못할 선택'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그린벨트를 두고 벌이는 계산이 원칙과 맞지 않음을 느낀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그린벨트를 '개발하지 않고 남겨둔 땅'으로 보는 관념이 여전한 것이다. 그보다는 기후변화 속에서 도시민을 구할 생태 방벽으로 '도시녹지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기후변화가 일상적 재난이 되는 현실에서 그린벨트의 현실 가치가 새롭게 강조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올여름의 맹더위를 겪으면서 절실하게 갖는 생각이다.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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