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저술 '법의 정신'
근대국가 탄생 지대한 영향
우린 진영논리로 "분립 위배"
거부권·시행령 국회 형해화
국가권력 간 균형·견제 중요
논설위원 |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 등 국가권력의 분립을 논한 인물은 많다. 특히 존 로크는 저서 '정부론'에서 '왕권신수설'을 부인하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며 입법과 행정 이권분립을 주장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의 초석을 놓은 셈이다. 몽테스키외가 20년에 걸쳐 저술한 '법의 정신'은 31편으로 구성됐다. 법의 본질을 탐구·해부하면서도 행정·입법·사법권 분립의 타당성과 정당성, 시대적 배경을 촘촘하게 엮어냈다. 근대 법학과 정치철학의 진화를 추동했으며, 근대국가 탄생과 공화정·민주주의 창발에 끼친 영향력이 심대하다. 미국 건국의 푯대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법의 정신'은 존 로크와 미국 헌법을 잇는 다리"라는 수사(修辭)가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몽테스키외를 소환한 건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진 임명에 제동을 건 판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서울행정법원은 방송문화진흥회 현 이사진이 낸 방송통신위원회의 새 이사 선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 결정으로 방문진 신임 이사 6명에 대한 임명 효력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지됐다. 여당은 "행정부 인사 조치를 가처분으로 중단시켰다"며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발끈했다.
삼권분립 위배? 과연 그럴까. 법원은 전체 방통위원 5명 가운데 2인만으로 중요 사안을 심의·의결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봤다.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회 구성에 반영해 방송의 자유와 공정성 등을 달성하도록 한 방통위법의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 임명 과정에서 사전에 안건을 공개해야 한다는 운영규칙을 무시했고, 지원자 83명의 서류를 1시간30분 만에 처리했다는 졸속심사 논란도 제기됐다. 행정부가 절차나 실체에서 위법한 행정을 했을 때 위법 여부를 판단해 무효나 정지를 내리는 것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다. 견강부회의 논거로 사법부 판결을 적대시하는 게 오히려 삼권분립 정신을 그르치는 행위 아닌가.
기실 한국은 전형적인 행정국가다. 행정국가? 행정권이 입법권이나 사법권보다 우위에 있는 나라를 말한다. 행정부 수반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도 행정국가의 표상이다. 대한민국 헌법 78조와 104조의 공무원 임면권은 대통령 권한의 백미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국무총리와 장·차관,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아우른다. 사정권력을 '원격 조종' 할 수 있는 구도다. 국군통수권, 법률안 거부권, 사면권, 행정입법권도 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이다. 거부권과 행정부의 시행령이 국회 입법권을 형해화하기도 한다.
삼권분립의 본령은 국가권력 간의 견제와 감시, 균형이다. 삼권의 균형과 견제기능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까닭일까. 걸핏하면 '삼권분립 타령'이 튀어나온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대통령실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논평을 냈다.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했다는 논리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잇단 거부권 행사에 대해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짐이 곧 국가"라고 외친 루이 14세 시대의 삼권분립은 '자다가 봉창'이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공화국에선 실질적 삼권분립 실천이 국격과 정치수준을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다. 진영논리를 앞세운 '삼권분립 타령'보다 국가권력 분점의 명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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