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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窓] 정부와 의료계, 서로 다른 원점 재논의

2024-09-13

[메디컬 窓] 정부와 의료계, 서로 다른 원점 재논의
고재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화원연세병원 병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29일 취임 후 두 번째 국정 브리핑을 연 자리에서 "의대 증원은 마무리되었다"고 하며 의료개혁의 본질인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의 상황은 지난 2월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사직한 전공의 1만여 명과 그 빈자리를 힘들게 지키고 있던 교수들의 사직으로 응급실을 포함한 지역, 필수의료가 도리어 무너지고 있다.

같은 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의료 공백 상황이 지속되어 의료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추석을 앞두고 여러 위기설이 나온다'는 기자의 언급에 윤석열 대통령은 종합병원의 비상 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는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응급실 뺑뺑이'가 증원 발표 이전보다 더 심해지고, 이로 인한 환자들의 고통과 의료 현장에서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대통령의 인식을 보여준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참고해보면 전국 권역 응급의료센터 의사 수가 지난해 4분기 910명에서 2024년 8월21일 기준 513명으로 43% 넘게 감소하였고, 응급의학과 전문의 및 당직 의사의 부족으로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 내 대형병원에서도 응급실 일시 폐쇄(셧다운)가 일어나고 있다. 응급진료 후 배후진료 역량도 가파르게 소진되고 있다. 응급실에서 처치한 환자를 병원 내 흉부외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에서 후속 진료하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는 것이 현 사태의 핵심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응급실 진료 후 수술, 처치, 마취 등 행위에 대한 수가 인상 계획 및 군의관 투입 등의 대책을 발표하였으나, 의료 공백이 바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이러한 심각한 의료 상황에서 한동훈 대표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를 거부했던 대통령실은 완강했던 태도를 바꾸어 지난 6일 여당과 함께 2026년도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무조정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의료계가 2026학년도 이후의 증원 규모에 대해 합리적 의견을 제시할 경우 원점에서 재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의사협회, 전공의, 의대생의 단일된 의견은 "2025년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고 재논의"하는 것이다. 이는 의료계가 총선 전 2월,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충분한 협의도 없이 정부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을 발표한 후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의견이다.

당장의 2025년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의 휴학은 정부와 여당이 제시하는 2026년 증원 재논의로는 돌이킬 수 없다. 응급의료와 지역,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전공의 및 의대생의 복귀는 현재 유지되고 있던 K- 의료시스템을 다시 살리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정부의 졸속 정책 추진에 대한 사과와 증원 전면 백지화만이 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2025년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외면하고 2026년 의대 증원을 재논의하자며 원점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언행이다. 미래의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를 위한 의료개혁이 현재의 응급의료와 지역, 필수의료를 붕괴시키고 있는 지금, 정부가 돌려야 할 원점은 2024년 2월 이전의 K-의료시스템이다. 의료개혁은 원점(zero base)을 회복한 다음 고민할 문제이다.

고재진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화원연세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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