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펑크·인플레이션 상황
감세 양가적…適期도 아냐
래퍼 곡선 '황금세율' 시사
영국 보수당 참패 짚어봐야
규제개혁·'창조경제'가 해법
논설위원 |
글로벌 전자결제업체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이 오래전 출간한 'Zero to One'은 제목부터 '창조경제' 냄새를 물씬 풍긴다. 피터 틸은 "성공한 기업이 되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有)를 더 큰 파이로 키우는 것,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 또한 창조경제다. 와틀즈는 저서 '불멸의 지혜'에서 "있는 것 가지려고 서로 경쟁하는 건 하책"이라며 "부(富)를 만드는 창조자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낡은 것은 계속 파괴하고 새로운 것은 계속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경제구조를 혁신해나가는 과정을 '창조적 파괴'로 규정했다. 창조적 파괴란 말을 만든 인물은 독일의 마르크스 이론가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였지만, 슘페터에 의해 전파되면서 슘페터의 용어처럼 굳어졌다. 창조적 파괴는 러프한 창조경제다.
애석하게도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엔 '창조'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담론을 끌어낼 정체성이나 색깔도 모호하다. 감세 말고는 눈에 띄는 게 없다. 종부세 공제액을 상향 조정하며 금융투자세는 폐지로 가닥을 잡았다. 상속세의 경우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공제액을 10배 올리며 최대주주 할증을 폐지한다나.
하지만 감세정책은 양가적(兩價的)이다. 기업 감세는 투자 여력을 증진시켜 고용을 촉진할 수 있고 개인에 대한 감세는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유인한다.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감세는 시중 통화 환수효과를 저감해 인플레이션을 추동한다. 서민들의 가계부담은 더 늘어난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값이 들썩이는데 부동산 관련 세금 인하가 능사인지 의문이다. 종부세 완화는 '똘똘한 한 채' 욕구를 부추길 게 뻔하다.
재정 건전화는 또 어떡할 건가. 지난해에만 56조원의 세수 펑크가 났다. 올해 1~6월 국세 수입은 168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조원이나 줄었다. 세수 결손을 보전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오른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래퍼가 제시한 래퍼 곡선은 세율의 황금비율을 찾으라는 고언이다. 무분별한 감세는 조세 최적점 이탈을 야기할 수 있다.
시야를 확장하면 정부가 펼칠 경제정책은 무궁무진하다. 정작 필요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는 왜 좌절됐나. 로톡, 삼쩜삼 같은 플랫폼 서비스 규제는 왜 풀지 않나. 규제개혁과 낡은 규제 폐지야말로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다.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고양하고 산업을 첨단화하며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건 창조경제에 부합한다. 그나마 기획재정부가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경방)과 함께 내놓은 '역동경제 로드맵'에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긴 하다. 모험자본의 활성화, 산지·농지의 활용도 제고, 노동인력 업그레이드가 그것이다. 생산요소를 효율화하겠다는 복안이니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2022년 10월 경제 초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450억파운드 감세안 발표는 글로벌 금융발작을 촉발했다. 보수당 폭망의 시작점이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44일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2024년 총선. 보수당은 190년 만의 참패로 정권을 잃었다. 무리한 감세와 인플레이션 방치로 민심이 돌아선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가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감세'는 양가적이어서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윈-윈 게임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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