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패륜자식 염두에 둔
상속권 상실제 논의했는데
파렴치부모 막는법도 생겨
10년전만해도 상상도 못할
변해버린 사회 서글프기도
정혜진 변호사 |
칼럼의 시기가 묘하다.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차례를 지내는 전통 명절을 보낸 직후에 파렴치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는 법 개정에 대해 쓰고 있으니 말이다. 몇 달 전 칼럼에서 '구하라법' 통과에 대한 기대를 밝힌 바 있는데(5월2일자 칼럼 '헌재 발(發) 구하라법'), 지난 8월28일 '구하라법'의 취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생각보다 빨리 후속 칼럼을 쓰게 되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민법 개정안의 핵심은 피상속인(사망한 자)의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게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중대범죄행위를 하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에 한하여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다. 그동안 우리 민법에는 '상속결격' 사유만 있었는데, 이제 '상속권 상실' 사유가 새로 생기는 것이다. 상속결격은 법으로 정한 사유(예컨대 유산을 노리고 고의로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가 있으면 자동으로(즉 법원의 판단 없이) 상속 자격이 박탈되는 제도인 반면,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는 법에 규정한 사유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상속권을 상실하는 게 아니라 법원이 상속권 상실 선고를 해야만 상속권이 배제되는 제도다. 즉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상속 자격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사망한 자녀(피상속인)가 생전에 그런 유언을 했거나 그런 유언이 없었던 경우에는 양육한 부모 쪽(없는 경우 형제자매)이 법원에 자식 버린 부모의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하고 법원이 그 청구를 받아들여야만 파렴치 부모의 상속권이 상실되는 것이다.
부양의무는 부모가 자식에 대해도 있지만, 당연히 그 역도 성립한다. 따라서 법이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즉 부모의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에 한하여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를 마련한 것은 논리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이 법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 그리고 이 법에 '구하라법'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가 바로 그 '선택'을 설명한다.
흥미로운 건 상속권 상실 제도가 처음 논의되었을 때만 해도 '파렴치 부모'가 아니라 '패륜 자식'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다. 2011년 법무부 가족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상속권 상실 제도 도입을 처음 검토했는데, 그 배경은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죽인 자식은 상속결격자가 되는데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을 외면하는 자식에게도 상속결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등을 통해 자식과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한쪽 부모가 불행한 사고로 사망한 자식의 사고 보상금을 받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자녀 재산 상속'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유명 배우의 상속 분쟁으로 여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마침내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법이 마련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패륜 자식' 막자고 검토한 법이 '파렴치 부모'를 막는 법으로 바뀌는 데에도 그 정도의 세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법이 마침내 마련되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자식 버린 부모를 막는 법이 생겨야 할 만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서글프기 그지없다. 앞으로 10년 후 가족공동체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약간의 두려움마저 드는 건 기우에 불과할까.
정혜진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