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경기장 공연 몰리자
잔디문제로 여름내내 논란
공연장 인프라 부족으로
케이팝이 위축될 지경까지
국가가 나서 문제해결해야
문화평론가 |
지난 5월에 진행된 임영웅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이 아직까지 화제다. 바로 잔디 문제 때문이다. 당시 임영웅 공연에선 매우 초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뭔가 개인공연 같지 않은, 마치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올림픽 개막식 기념 공연 같은 느낌이었다. 그건 바로 운동장이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개인이 경기장을 빌려 공연을 진행하면 제일 먼저 운동장 객석부터 채운다. 운동장에서 가수를 제일 가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운동장 좌석이 제일 비싸다. 매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공연하는 입장에서도 바로 눈앞에 펼쳐진 운동장에 관객이 가득 들어차 호응을 해줘야 힘을 받아 공연을 수월하게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경기장 공연에선 당연히 운동장에 관객이 가득 들어찬 모습이 일반적 풍경이다. 반면에 올림픽 개막식 같은 행사는 운동장에 관객석을 아예 설치하지 않는다. 텅 빈 운동장에서 공연단 퍼포먼스나 미디어 아트 같은 것이 펼쳐진다. 이런 걸 명시적으로 인지하지 않는다 해도 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임영웅 공연은 개인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텅 빈 운동장에서 무용단 퍼포먼스나 미디어 아트가 펼쳐져 많은 이들이 매우 이색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럴 정도로 임영웅이 아주 이례적인, 초유의 선택을 했다. 그 이유는 잔디보호 때문이었다. 지난해 잼버리 대회 이후 축구팬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에 대해 걱정을 해왔다. 문화공연이 잔디 훼손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그런 가운데 임영웅은 프로 축구 시축 축하 공연을 할 때도 잔디 보호 때문에 공연단 전원이 축구화를 신더니, 급기야 개인공연 때 운동장을 비우기까지 한 것이다. 이런 결단으로 인해 임영웅은 최소 수십억 원대 매출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 많은 이들이 충격받았다. 개인공연의 운동장 좌석 포기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임영웅 이외의 공연들은 당연히 계속해서 운동장 좌석이 설치된 채 진행됐다. 그로 인해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 논란이 올 여름 내내 이어졌다. 최근엔 축구팬들이 아이유 공연 취소 민원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서울시가 결단을 내렸다. 내년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 시에 운동장 객석 설치를 아예 금지하기로 했다. 임영웅이 상상도 못했던 일을 현실화시키자 많은 이들이 '아 이게 되네'라고 충격받았고, 그것에 영향받아 서울시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임영웅이 한국 스타디움 공연 문화의 새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애초에 이런 논란이 생긴 이유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공연장으로의 복합 활용에 대해 준비가 미비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대형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수리에 들어가면서 서울에 대형 공연장이 사라지자 월드컵경기장으로 공연 수요가 몰리면서 탈이 난 것이다. 정상적인 대형 공연 인프라가 있었다면 임영웅이 매출 수십억 원을 포기할 이유도, 아이유가 공연 취소 민원까지 당하면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한국은 케이팝 한류를 국가적으로 내세우는 나름 대중문화 대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대형 공연장이 없어 대형 공연을 제대로 열지 못한다. 공연장 문제 때문에 테일러 스위프트는 내한을 포기했고 한류스타들은 해외 공연을 주로 하는 형편이다. 공연장 인프라 부족으로 케이팝이 위축될 지경까지 됐다. 월드컵경기장 잔디를 공연 겸용 이동식 시스템으로 개량하든 공연장을 새로 짓든, 국가가 나서서 대형 공연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케이팝 공연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다.문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