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술탄 카부스 경기장에서 팀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지형 문화평론가 |
대학 시절, 포커를 귀신 같이 잘 치던 선배가 하나 있었다. 그 선배가 진짜 프로급의 실력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평범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소위 '마귀'로 불리기 손색이 없었던 실력인 것만은 확실했다. 한번은 그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포커를 잘 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 선배 왈, "간단해. 포커를 4명이서 밤새도록 친다고 가정하면, 내가 가장 좋은 패를 잡을 확률은 25% 전후야. 그렇지? 그러니까 포커에서 돈을 따려면, 내가 가장 좋은 패를 잡지 못한 75%의 상황일 때, 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승리를 내 쪽으로 몇 차례 가져와야 한다는 거지. 물론 내가 가장 좋은 패일 때 확실하게 이기는 것도 중요한 거고."
거기까지 듣고 생각해보니 포커의 고수가 되는 건 이론적으로는 참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지는 패를 들고서 더 강한 패를 들고 있는 상대를 이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결국 나는 포커 고수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실 나 같은 소심한 놈은 푼돈이 걸린 도박판에서조차 절대 도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안전하게 플레이를 하다 보니 항상 성적표는 본전 언저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주제 파악 못하고 깝치다가 큰돈을 털리는 호구들보다는 낫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 정작 자기가 이겨야 할 25%의 판에서조차 시원하게 이기지 못한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왜 굳이 그걸 하고 있나 싶다.
살면서 축구를 오래 보다 보니 축구 감독 노릇도 포커 고수들의 노름판과 조금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세 가지 등급의 감독이 있었다. 최고수는 역시 거스 히딩크였다. 한국 축구인들과 기자들 사이에서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확실히 위의 선배의 설명에 부합하는 최고수의 기술을 보여주었다. 2002년 당시 그는, 폴란드전처럼 우리 전력이 한 수 위였을 때 무난한 승리를 가져오는 것에 더 보태어, 포르투갈전이나 이태리전처럼 우리 전력이 한 수 아래일 때도 귀신 같이 경기를 잡아내는 신기를 보여줬던 것이다.
히딩크 바로 아래로 쳐야 할 감독은, 허정무와 파울로 벤투가 아닐까 한다. 둘은 각각 남아공과 카타르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끌었으니 그 업적만으로도 넉넉하게 2티어 감독으로 분류될 자격이 있을 것이다. 이 두 감독의 축구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딱 쥔 패만큼 해내는 축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정무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4승 4무의 무난한 성적으로, 벤투 역시 연이은 중동 원정 속에서도 7승 2무 1패의 호성적으로, 각각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둘은 16강에서 각각 우루과이와 브라질이라는 강호를 넘는 기적은 못 보여줬지만, 적어도 더 좋은 패로 더 나쁜 패에 져버리는 호구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에서 '제 실력만큼만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만한 나이가 되면, 그들 정도면 엎드려 모셔야 할 감독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신태용 같은 도깨비 케이스도 있긴 했다. 해볼 만한 경기는 지고, 질 경기는 난데없이 덜컥 이겨버리는 감독 말이다. 그러나 그런 예외적인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면, 2002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국가대표팀 감독들은 지는 매치업의 경기는 당연히 지고 이겨야 하는 매치업의 경기마저도 비기거나 져버리곤 하는 3티어의 감독들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완강하게 투쟁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반복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체 팔레스타인과 비기며 월드컵 3차 예선을 3티어스럽게 시작한 축구 국가대표팀. 다행히 오만을 잡으면서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기적을 바라지는 않으니, 우리 실력만큼만 하자. 참고로 우리 대표팀의 전력은 역대 최고다. 문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