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선명하지 않지만 그래서 아련한 필름 사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LP 음악, 헌책 사이에 꽂혀 있던 오래된 편지 한 장…. 한때는 당연하고, 또 한때는 잊혀가던 것들. 그런 오래된 것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왜 빛바랜 것들을 다시 찾을까. 효율이 중요한 시대에 이런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낡고, 느리고, 불편하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래서 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낭만'이 있으니까.
'낭만'은 곧 '향수'다.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지만 자연스레 옛 감성에 끌린다. 단지 복고풍 때문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경험까지 느낄 수 있어서다. 각박한 현실에 부딪힐 때면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길 때가 있다. 요즘 사람들도 그렇다. '빨리'가 중시되는 세상에 지쳐버린 이들이 과거의 것을 찾으며 따뜻한 감정을 채우는 것이다. 당대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까지.
LP 음악이 나오는 위스키 바. 턴테이블과 다양한 LP 앨범들이 구비돼 있다. <독자 제공> |
예컨대 우리가 손에 쥔 필름 카메라는 단순히 추억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추억은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한 번으로도 기록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편함을 감수해가며 필름 카메라를 쓰는 것은 '낭만'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필름을 골라 끼우고, 36장을 다 쓸 때까지 한장 한장을 소중히 여기며 신중히 셔터를 누르고, 사진이 어떻게 나온 지 모른 채 설렘을 안고 인화하러 간다.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결과물을 천천히 기다리는 그 시간 속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그 불완전함이 사진 한 장에 더 큰 의미를 만들어준다.
최근 헌책방을 찾았을 때도 상태 좋은 책이 아닌 빛바랜 책을 샀다. 황지우의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의 초판을 찾았다.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된 낡은 책을 찾은 이유도 역시 '낭만'에 있다. 오래된 시간만큼 사람의 흔적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책장 사이사이 남겨진 밑줄과 메모, '대구교대 일요문학회의 어떤 이'에게 보낸 오래된 편지 등으로 세월의 흐름과 한때 이 책을 소유한 누군가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낭만 때문에 과거의 것은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힙'하고 세련되게 다가오는 것이다. 옛 물건으로부터 시작된 노스탤지어는 이제 대중문화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몇 달 전 일본 도쿄돔에서 국내 아이돌 그룹의 멤버간 선보여 화제가 됐던 '푸른 산호초' 무대가 뇌리를 스친다. '푸른 산호초'는 일본 버블경제 시절 영원한 아이돌로 불린 '마츠다 세이코'의 대표곡이다.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한국인들에게까지 입소문을 타 '레전드' 무대로 불리고 있다.
세월에 휩쓸려 잊고 있던 감정을 깨우는 신선함은 그 시대를 거친 이들은 물론 거치지 않은 이들에게도 새롭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들이 여러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 다시 그려지고 있다. 그 모습을 들여다봤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