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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의료 현장은 정말 괜찮은가

2024-09-26

[영남시론] 의료 현장은 정말 괜찮은가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덥고 길었던 올 추석, 최대의 화두는 '다치면 안 된다'였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외출은 금지됐고 연휴를 기다렸던 가족 행사는 축소됐다. 걱정 없이 먹지도, 마음껏 마시지도 못했다. 가능한 집 안에서 조심조심 조용하게.'빽'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의 추석은 그래서 아슬아슬했다. 아프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해서 아프지 않고 병원 갈 일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연휴를 하루 남긴 채 동생은 갑자기 혈뇨를 쏟았다. 핏물로 가득 찬 변기를 보고 겁에 질린 동생은 명절 연휴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던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동생은 진료도 받아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제 발로 걸어가서 명료한 정신으로 증상까지 정확하게 말한 동생은 전혀 응급하지 않은 환자였던 모양이다. 환자들로 아비규환인 그 넓은 응급실에 의사라고는 나이 지긋한 교수님 한 분이 전부였다고 한다. 동생은 차마 붙잡고 하소연하지도, 뭐라고 항의하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응급실 뺑뺑이'인가 싶었다.

조심해서 아프지 않았던 덕분인지, 아픈데도 병원을 찾지 않은 때문인지 올 추석 연휴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지난해보다 무려 31.1%나 줄었다고 한다. 어떻게 추석은 넘겼다 치자. 심혈관 질환과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는 가을·겨울은 또 어떻게 견딜 것인가. 언제까지 아프지 않거나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아야 하는가.

현재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상급종합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 67곳 가운데 절반 정도가 10명 이하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세 곳 중 한 곳은 의사 1명이 '나 홀로 당직'을 서고 있다. 혼자 근무 중에 심정지 환자라도 오면 나머지 중증 환자들은 한 시간 이상 그냥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이, 그것도 사람이 죽고 사는 의료 현장에서 무려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거나.

정부는 의료공백에 대한 대책도 없고 의정 갈등을 풀어나갈 해법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의료 현장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찢어진 이마를 꿰매느라 22곳의 병원을 찾아 헤맸다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92곳의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으나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아 사망한 30대, 다리가 절단된 상태로 응급실을 찾아 110㎞를 뺑뺑이 돈 노동자. 추석 연휴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가짜뉴스인가. 의사들이 병원을 나갔는데도 아무 문제 없이 의료 현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면 도대체 의사 증원은 왜 하냐는 댓글이 달리는 이유다.

국민의 피로감은 커졌고 어렵게 시작한 의료 개혁의 동력마저 시들해지고 있다. 환자는 나 몰라라 병원을 뛰쳐나간 의사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국정브리핑에서 연금·의료·교육·노동을 아우르는 4대 개혁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라고 했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고도 했다. 개혁의 길을 저항에 굴하지 않고 가는 것은 당연하고 옳은 일이지만, 그 길을 혼자 갈 순 없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타협하여 함께 가야 하는 길이다. 그 저항이 옳든 그르든, 그게 정치다.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이 무모한 치킨게임은 이제 끝내야 한다.'10년 뒤 의사 부족'으로 지금의 환자가 고통받아서야 되겠는가.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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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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