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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남 의령 '호국 의병의 숲'

2024-10-18

꽃길따라 강물따라 가을 속으로…
곽재우 장군 첫 승리한 곳 '의병의 숲' 조성
낙동강변 온갖 꽃 심어 광활한 꽃밭 만들어
황화 코스모스·아스타 국화·댑싸리 등 장관
남강·낙동강 만나는 기강나루 달맞이 명소

[주말&여행] 경남 의령 호국 의병의 숲
창녕 남지에서 낙동강을 넘어 함안 땅을 밟고 다시 남강을 건너 의령으로 간다. 함안 마산마을 앞을 흐르는 대사천변의 무지개 길과 대산면의 대단한 들판을 본다. 노란 바탕에 까맣게 적어 놓은 '배암실들' 이름을 보는데 혀가 꼬인다. 남강을 건너면 의령군 지정면이다. 도로가에 '이호섭기념도로'라는 표지판이 있다. 의령 출신인 이호섭은 주현미의 '짝사랑', 현철의 '싫다싫어',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 등의 작사가다.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편승엽의 '찬찬찬' 등을 작곡하기도 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수만 무려 900곡이나 되는 스타 작곡가인데 지난해 말 지정면 두곡리 일대 8.7㎞ 구간이 '이호섭로'로 명명되었다 한다. 법정 도로명은 아니지만 지역적인 상징성이 있다. '마주보며 서로가 아무런 말없이 똑딱 똑딱 흐르는 시간' 생각지 못한 향수 때문에 어깨가 들썩 한다.

[주말&여행] 경남 의령 호국 의병의 숲

◆ 무듬이 땅에 펼쳐진 드넓은 꽃밭

다리 건너 강과 멀어졌다가 다시 봉곡천 건너 낙동강을 찾아간다. 천과 함께 가는 길에서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를 발견한다. 오천리의 수령 500년 된 보호수다. 천 너머에는 잘 정리된 들이 펼쳐져 있고, 들 너머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남강이 흐른다. 1970년 무렵까지만 해도 마을 앞까지가 전부 거대한 늪지였다고 한다. 지정면의 강변 마을이 대개 그랬다. 농사 좀 하려면 장마가 들어 물이 넘치고 수확을 할라치면 태풍이 와 또 물이 넘치던, 그래서 한숨소리 끊이지 않던 땅이었다 한다. 한심이 고개, 한심이들, 물구디 같은 옛 지명들은 오래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한숨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봉곡천 수문을 지나자 남강이 보이고 곧 낙동강 하천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리고 성산마을 표석과 수월버스정류장과 '호국의병의 숲' 조형간판 너머로 드넓은 꽃밭이 펼쳐진다. 물이 범람하는 지역을 무듬이, 무넴이, 무넘이, 물넘이 그리고 수월이라 부른다. 성산마을 앞 강변 무듬이 땅이 지금 꽃밭이다.

황화 코스모스가 황금물결을 이룬다. 세상의 모든 코스모스가 피어 쇠라의 그림처럼 치밀하게 몽환적이다. 둥글둥글한 댑싸리는 발갛게 물들었고 아스타 국화는 무섭고 신비스러운 보랏빛으로 만개했다. 분홍빛 가우라가 가녀린 모습으로 한 자락 부는 바람에 살랑이고 안개 같은 핑크뮬리가 붉은 지평선을 그린다. 넓다고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무엇보다 이런 댑싸리 밭은 처음이다. 극진한 물량공세 앞에서 망연해진다. 옛날에는 다 자란 갈색 댑싸리를 베어 빗자루를 만들었다. 지금은 붉은 댑싸리의 계절에 축제를 연다. 댑싸리 축제는 매년 10월 초에 열린다는데 올해는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열렸다. 축제는 끝났지만 아직 먹거리 장터가 열려 있고, 빈 객석의 무대에서 각설이가 노래를 부르고, 장난감 같은 댑싸리 꽃기차가 손님을 태우고 달린다.

[주말&여행] 경남 의령 호국 의병의 숲 ◆ 기강나루 호국 의병의 숲

꽃밭 모서리에서 낙동강과 남강이 만난다.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기강(岐江)이라 부른다. 옛날 기강에는 나루터가 있어 낙동강 건너 남지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군을 조직한 후 제일 먼저 진을 쳤던 곳이 바로 기강나루였다. 왜군의 주력부대가 북상하면서 낙동강을 이용해 병력과 군수물자를 운반하자 1592년 5월 4일 곽재우장군은 1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기강 둑에 매복해 있다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왜선에 일제히 공격을 가해 14척을 격퇴시켰다. 기강전투는 곽재우 장군의 첫 전투이자 첫 승리였고 나아가 육군과 수군을 통틀어 조선 최초의 승리였다.

2009년에 4대강 정비 사업이 시작됐다. 그와 함께 '낙동강 희망의 숲' 조성사업이 추진됐는데 의령군은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승리한 이곳에 2011년 '호국 의병의 숲'을 조성했다.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하니 의미 깊다. 이후 2019년 즈음 일부 구간에 핑크뮬리와 메밀꽃 등을 심어 가꾸었고 이후 땅을 늘리고 군민들에게 어떤 꽃이 좋은지를 물어 현재의 광활한 꽃밭을 만들었다. 꽃밭 속에 메타세쿼이아가 불쑥불쑥 솟아 있다. 꽃밭이 너무 넓어서 작고 왜소해 보이는 그들은 사실 높고 늠름하다. 꽃밭 한쪽에 배롱나무와 메타세쿼이아, 은행나무 등 관목과 교목들로 이루어진 숲이 있다. 그곳에 곽재우 장군의 형상을 새긴 '호국 의병의 숲' 조형물이 서 있고 숲 조성에 참여한 이들의 추억과 사연을 담은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여는 날은 2031년 4월 4일이다. 그런데 '타임갭슐'이라 새겨져 있네, 음.

[주말&여행] 경남 의령 호국 의병의 숲◆ 기강나루 사람들

"저 저 봐라. 끝이 엄따." 끝이 없을 것 같은 꽃밭의 끝 즈음에서 제방길에 오른다. 제방 너머 자리한 성산마을은 꽤 규모가 있어 보인다. 옛날 강둑이 없던 시절에는 마을 바로 앞까지 강물이 흘렀고 강변 무듬이 땅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지금은 마을에 논이 있다. 작지만 황금빛이다. 저 무성한 나무는 회화나무인가. 넓은 나무그늘에 앉은 한 아낙이 마늘을 갈무리하고 있다. 지정면 사람들의 생활권은 의령읍이 아니라 남지읍이다. 예부터 기강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지 장터를 오갔다고 한다. 1969년 9월 추석을 열흘정도 앞둔 장날, 남지에서 출발한 배가 지정면을 향해 오던 중 전복되어 성산마을 주민 30여 명이 희생된 아픈 기억도 있다. 뱃길로 10분이던 길이 나루터가 사라진 지금은 빙 둘러 1시간이 걸린단다. 그래서 다리 건설이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다. 남지에서 함안 땅을 밟고 오면서 목가적이고 느긋하지만 비경제적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사실이었다.

제방 아래 꽃밭 속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와 검은 턱시도를 입은 젊은 남자가 있다. 그들은 하얗고 자그마한 강아지들과 함께 꽃밭 속을 활보한다. 돕는 이 하나 없이, 그들은 지금 용감하고 황홀한 상태로 웨딩의 전일을 만드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댑싸리는 쓱 쓱 파란 가을 하늘을 쓸어대고 분홍 셔츠를 입은 중년 남자가 코스모스로 변하는 환영을 본다. 기강나루에 초승달이 내려앉아 있다. 초승달에 올라 탄 사람들, 초승달 주위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모두 달나라의 토끼 같다. 기강나루는 달맞이 장소다. 달은 바다에 달 뜨듯 남지의 낙동강 위로 덩실 떠오른다고 한다. 덩실, 생각만 했는데 각설이가 노래를 부른다. 덩실덩실 춤추며.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방향으로 가다 남지IC에서 내린다. 남지톨게이트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남지입구오거리에서 10시 방향으로 나가 남지대교 건너 이룡삼거리에서 우회전 해 1021번 도로를 타고 직진한다. 칠서일반산업단지를 관통해 가다 공단사거리에서 우회전 해 직진, 부목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해 길 끝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1041번 지방도인 함의로다. 두곡, 성산 이정표를 만나면 우회전해 기강로를 따라 봉곡천과 함께 직진한다. 봉곡천 수문을 지나면 남강 안내판이 나타나고 곧 낙동강과의 합수부인 기강과 함께 강변의 광활한 꽃밭을 볼 수 있다. 댑싸리 축제는 끝났지만 20일까지 먹거리장터를 운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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