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
윷놀이의 진수는 말쓰기다. 운에다 약간의 요령을 보탠 윷가락 던지기보다 능수능란한 말쓰기를 '웃질'로 친다. 윷가락의 평면이 위로 나올 확률이 50%라면 도가 나올 확률은 1/4, 개 3/8, 글 1/4, 윷 1/16, 모는 1/16이라 한다. 말을 이동할 때 해당 위치에 자신의 말이 있다면 다수의 말을 업을 수 있다. 포갠 말들은 함께 이동하는 까닭에 신속하지만 한 번 잡히면 업힌 말 모두 죽는다. 어지간한 배포가 아니고서는 4개 말 전부를 하나로 합친 '몰빵' 행마는 시전하지 않는다. '몰빵'이 '몰살'로 이어지면 승부는 기실 끝이다.
이재명 외 대안 없는 야당, 그에게 다 걸었다. '여사 수호'에 기진맥진한 윤 정부, 한 몸처럼 공동 운명의 길을 택했다. 미국에 올인한 대한민국, 동맹에 국가 안위를 통째 맡긴 듯하다. 그런 '이재명' '여사' '미국'의 운명이 11월에 변곡점을 맞는다. 11월이 시작됐다. 판도라의 상자가 순차적으로 열리면 '몰빵'의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터이다.
미 대선이 나흘 앞이다. 시장이 트럼프에 베팅하는 건 예사롭지 않다. 비트코인은 역대 최고치를 돌파하고 증시에선 트럼프 수혜주가 초강세다. 자국 우선주의자 트럼프의 첫 압박 대상은 한국이 될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 둘 중 하나의 시장만 고르라는 압박부터 받을 것이다. 세계가 우려하는 '트럼프 리스크'를 김정은과 푸틴은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두 사람은 트럼프 당선에 '다 걸기'했다. 북한이 우크라전 참전을 서두르고 어제 ICBM을 발사한 이유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동맹마저 발을 뺄지 모를 전쟁에 우리 정부가 개입 여부를 저울질하는 건 바보짓이다.
트럼프는 '칩스법'도 팽개칠 것이다. 보조금 약속을 믿고 미국에 수십조 원씩 베팅한 우리 기업엔 날벼락과 같다. 한·미·일 3국 협력은 미 대선, 일 자민당 총선 참패로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공 들여왔던 '가치 동맹' 시대는 가고 '이익 동맹'이 지배할 것이다. 미·일 몰빵 외교가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하는 걸까. 5일 결판 난다.
이재명은 15일, 25일 두 번의 1심 판결을 기다린다. 하나라도 실형이 나오면 치명상을 입는다. 야권 인사들을 만나면 두 번 놀란다. 이재명 리스크에 무덤덤한 데 놀라고, 이재명 리스크가 현실화한 후의 무대책에 한 번 더 놀란다. 판 돈 다 건 도박판의 긴장감이 전혀 없다. 몰빵이 몰살로 가는 전형을 보는 듯해 착잡하다.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10일)에는 뭔가를 해야 한다. 제2부속실·특별감찰관실 설치? 여사 사과? 총리 포함 인적 쇄신? 이것으로 여사 문제를 다 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야당은 특검법안을 또 상정할 것이다. 11월 안에 재표결까지 마칠 태세다. 민주당 비장의 무기는 실은 '상설 특검'이다. 관련 국회 규칙 개정안이 어제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대통령 거부권 대상이 아니어서 국회 통과만 하면 대통령은 3일 이내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 D-데이는 14일이라고 한다. 이건 '빼박'이다.
11월은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이다. 시인(나태주 詩 '11월')의 말이다. 너무 많이 왔지만 돌아갈 이유가 있으면 돌아가야 하고, 버리기엔 차마 아깝지만 버려야 할 땐 과감히 버려야 한다.
논설위원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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