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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 다시 돌아보는 대구형무소…"독립운동 가치 되새길 계기"

2024-11-06
[동네뉴스] 다시 돌아보는 대구형무소…독립운동 가치 되새길 계기
'대구형무소 순국 독립운동가 216위 추모식 및 공연'이 2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열렸다.

지난 2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대구형무소 순국 독립운동가 216위 추모식'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잊힌 순국의 터인 대구형무소를 재조명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대구형무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1908년 대구부에 처음 설립된 뒤 1910년에 현재의 경북대 치과병원과 일신학원 인근 삼덕동으로 이전됐다. 1923년에는 대구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었고 초기 3천800평 규모였던 시설은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7천800평으로 확장됐다. 1961년 대구교도소로 이름이 바뀐 뒤, 1971년에는 달성군 화원으로 이전했다.

정인열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대구형무소를 연구한 저서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에 따르면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수가 처음 알려진 176명에서 216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들 중 212명이 국가서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서대문형무소의 순국 독립운동가 195명보다 37명이나 많은 수치다. 대구형무소가 전국 각지에서 붙잡혀온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고 사형까지 당했던 중요한 역사적 장소였음을 알려준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김능진 위원장은 "대구형무소는 독립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로, 후손들이 이곳에서 애국정신을 배우는 기회를 지속해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도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심산 김창숙 선생과 전수용, 안규홍 의병장 등 많은 애국지사가 이곳을 거쳐갔다.

정인열 교수는 "국권을 잃은 후 의병운동과 무장투쟁이 독립운동의 핵심으로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애국지사가 목숨을 바치거나 고초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대구형무소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 건립을 목표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이번 행사는 2021년부터 매년 열리며, 올해로 네 번째를 맞았다.

글·사진= 이준희 시민기자 ljoonh11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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