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최근 대구 경제인들 사이에서 가업을 직접 승계하기보다는 M&A를 통해 기업을 승계하는 것이 지역 경제에 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업 승계를 고집하기보다 역량 있는 기업이 인수하여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에 부합한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대구 차세대경영인 협의회는 지난 15일 창립총회를 갖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유고 시 2세 경영인이 감당하게 될 리스크 등 기업 승계를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수 합병, 흔히 M&A로 불리는 과정은 많은 기업인들에게 아직 낯설고 위협적인 시도로 인식된다. 21년 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며 국내에 안긴 충격이 이러한 인식을 형성한 계기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적대적 M&A에 뛰어들어 최윤범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다투면서 언론의 이목을 끌고 있다.
누구도 자신과 가족, 직원이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M&A는 더 이상 미국이나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 또한 미국 사모펀드의 한국 기업 지분 인수, 국내 기업 간 매각과 인수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컨설팅 회사에서 실시했던 상업적 실사로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의 미래 사업성을 주로 검토했다. 하나의 거래에 컨설팅 회사 외에도 회계 법인, 투자 은행, 법무 법인 등 다양한 중개자들이 참여하므로 투명하고 합리적인 거래가 성사되었던 것 같다. 헐값에 매각되는 것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이 M&A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인수 경쟁이 과열돼서 매각 가격이 적정가보다 높아지는 승자의 저주를 주의해야 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사뭇 보수적인 지방의 경우 준비되지 않은 채로 원하지 않는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위험이 있다. 기업의 이념이나 철학을 무시한 채 기업을 사고 팔면서 단기 경영 성과를 통한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 사냥꾼에 알토란 같은 회사들이 매각될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경제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기업은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아 경쟁의 판도나 산업의 패러다임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이런 역학 구도 속에서 기업가는 자신의 기업을 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우상향 성장시켜야 한다. 핵심 성공 요인(Key success factor)을 재정의해야 하는 때를 식별하는 감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핵심 역량을 재정비하고 자원을 선택과 집중하여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기업 인수 여부를 검토할 때도 시장판을 새로 그리는 작업을 한다. 이를 위해 때로는 X, Y의 2차원 평면을 넘어 3차원 입체로 시장을 재정의한다. 각 축 또한 해당 산업을 관통하는 통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 정의한다. 평면 혹은 입체 도면에 자사와 경쟁사의 위치를 표시해보면 동종업계 대비 자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가 용이하고 어디를 공략할지 전략 세우기도 편리하다.
대구에는 100년을 이어가야 할 알찬 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수많은 도전을 견디고 때로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그 승계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경쟁사에 유능한 인재와 고객을 빼앗기기도 한다. 대구의 기업들이 백년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2세 경영인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기를 염원한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