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운 문화부장 |
신춘문예의 계절입니다. 이맘때면 문화부 책상에는 우편으로 보내온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수북이 쌓입니다. 문화부 기자들은 그날 온 우편물을 분류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며칠 전, 유독 하얀 봉투가 눈에 띄었습니다. 시 부문 응모작이었습니다. 작품과 함께 첨부한 첫 장에는 간략한 인적사항을 적기 마련인데, 이 응모작은 자필로 쓴 편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다시 겉봉투를 살폈습니다. 보내 온 주소는 교도소였고, 보낸 이는 수감자였습니다.
그는 자필 편지에서 자신을 '장기수'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45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시집을 가까이 접해본 적도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시집조차 접해보지 않았다는 그가 신춘문예에 굳이 응모를 한 이유는 '한이로 시인' 때문이었습니다. 한 시인은 장기복역수입니다. 교도소 수감 중에 '2023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시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당시 한 시인의 당선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기수형자가 시 부문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시를 적는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서 무작정 쓴 것이 부족함이 많을 겁니다. 저도 장기수라서 저 자신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서툰 마음으로 도전해봅니다"
그가 어떻게 한이로 시인의 소식을 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를 준 것은 분명했습니다. 편지를 읽은 후 그가 보낸 3편의 시를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숱한 시간을 버티며 유폐된 삶을 받아들이는 진솔한 시어들이 귀해 보였습니다. 행간과 행간 사이에는 '상념'과 '후회'가 뚝뚝 묻어났습니다.
두 해 전 이맘때, 교도소에서 만난 한이로 시인은 필자에게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이지만,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다시, 한 시인의 고백을 되새김질하며 '또 다른 교도소의 그'를 생각합니다. 그 역시 햇볕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며 저 너머의 시간을 혼자 뚜벅뚜벅 걷고 있을 것입니다. 볼펜 한자루 꼭 쥔 채 하얀 종이에 또박또박 시를 쓰며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릴 것입니다. 때론 그것이 쓸쓸한 '독백'에 그칠지라도, 때론 그것이 의미 없는 상념의 글쓰기라도, 언젠가는 분명 '고해성사'가 되고 '한 편의 시'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시이고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건필을 빌며, 한이로 시인의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냅니다.
"내 방엔 거울이 하나/나는 언니였다가 나였다가//서로 다른 옷을 입을 때/살짝 삐져나오는 다디단 표정//나란히 서면/자꾸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거야/우리에겐 곁눈질이 있으니까//이따금씩/거울을 볼 때/나를 잊어버리는데//나는 잘 있니?//학교를 벗어던진 우리는/나란히 자전거를 타고/횡단보도 위로 쏟아진 자동차들 사이로 뿔뿔이/흩어진다//반으로 나눠진 마카롱,/사라진 쪽이 너라고 생각하겠지//바닥에 번진 우리의 그림자를 지우느라/붉어지는/늦은 오후의 얼굴들//간호사가 건네는 푸른 옷을/얼굴처럼/똑같이 입고 우리는//사이좋게/캐스터네츠를 악기라고 말하고 난 뒤의 기분을/반으로 접는다//다른그림찾기와/같은그림찾기가/다른 말로 들리니?//내 방엔 거울이 하나인데/두 개//매번 언니였다가 나였다가//입 꼬리 살짝, 올라간다"('데칼코마니' 전문)
백승운 문화부장
백승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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