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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논설위원의 직터뷰] 연극·뮤지컬 연출가 이정남씨

2024-11-20

"영화 '록키' 주인공처럼 도전, 저만의 연극문법으로 세계적 연출가 될 것"

[논설위원의 직터뷰] 연극·뮤지컬 연출가 이정남씨
연극·뮤지컬 연출가 이정남씨가 경북도청 인근 원당지 내 정자인 보국정(報國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자가 "영화배우를 해도 성공했을 것 같다"는 덕담을 건네자 이씨는 "난 천생 무대 체질"이라며 "이왕 한 우물을 판 김에 세계적 연출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에서 자란 소년은 커서 '제복'을 입는 게 꿈이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중·고교를 거쳐 대입 재수까지도 해봤지만 그토록 원했던 '육군사관학교 입학'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내 갈 길이 아닌갑다 여겼다. 그러던 중 부산의 한 연극단에 있던 친구로부터 무대 스태프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무대 뒷켠에서 밧줄을 당기고 풀어주는 간단한 일이었다. 무대 막이 오르던 순간, 그는 말로 표현 못할 희열을 느꼈다. 두 눈에 들어온 '알록달록 오묘한' 조명 때문이었다. 그렇게 연극판에 마음을 빼앗기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부산 극단 '맥'의 대표는 물론 부산연극협회 회장에까지 올라 있다. 그 주인공은 현재 경북 안동과 의성에서 뮤지컬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연출가 이정남(56)씨다. 뮤지컬 왕의나라 시리즈(안동·2019~2024)와 뮤지컬 '박서생'(의성·2022~2023)이 모두 그의 손에서 빚어졌다. "내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라는 그를 만나 열정과 패기로 달려온 무대 인생 스토리를 들어 봤다.

"재수에도 '陸士' 진학 꿈 못 이룬 시절
친구의 부탁에 시작된 부산 연극단 일
막 오르는 순간 희열에 마음 뺏겨 30여년
부산연극協 회장·극단 '맥' 대표이기도
'로미오…' 정극에도 우리춤·소리 가미
'도전의 연속인 삶'답게 매일 열정 행보
현재는 안동·의성서 뮤지컬 바람 주도
연극 플랫폼 같은 '연극학교' 세울 꿈도"


▼ 안동·의성 무대에 올렸던 이정남 연출가 作 뮤지컬
[논설위원의 직터뷰] 연극·뮤지컬 연출가 이정남씨
올해 광복절 경북 안동시 안동탈춤공원 특설무대에서 열린 실경 뮤지컬 왕의나라 시즌3 '나는 독립군이다'. <영남일보 DB>
[논설위원의 직터뷰] 연극·뮤지컬 연출가 이정남씨
지난해 8월24일부터 나흘간 경북 의성 구봉공원 야외광장을 활용한 색다른 무대를 선보인 뮤지컬 '박서생'. <영남일보 DB>
▶올해 광복절 날, 안동에서 열린 뮤지컬 왕의나라 시즌3 '나는 독립군이다'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안동시민들이 함께 해주신 게 '신의 한수'였죠. 전체 출연진 200명 가운데 안동지역 배우가 20여 명, 시민 출연자는 무려 150여 명에 이르렀어요. 뮤지컬이라는 무대 예술이 전문 배우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입증했지요. 바로 이런 점이 안동에서 널리 회자되고 이슈가 된 것 같아요. 이젠 안동 분들이 문화적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서울의 유수 뮤지컬도 울고 갈 매머드급 뮤지컬이 향토 무대에 올려진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연출가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독립군이다'는 그 의미가 각별한 작품이었는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죠.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에 독립운동가 분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계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300명 넘는 분이 훈장을 받았고, 아직도 1천명 이상이 받지 못하고 있대요. 뇌리를 때리는 듯한 충격이었죠.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안동 분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과연 광복(光復)을 맞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뮤지컬 '나는 독립군이다'는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안동지역 지사(志士)들의 삶을 한 데 모아 춤과 노래, 연기로 조명했다.

▶작품마다 '우리 것'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생각해도 고집스럽죠.(웃음) 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가령,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정극(正劇)을 하더라도 우리의 춤과 소리를 반드시 집어 넣는답니다. 정극 쪽에선 당연히 탐탁치 않게 여기겠죠. 하지만 개의치 않아요. 우리 작품에 열광해 주는 관객이 있으니까요. 공연 예술은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부산지역 연극단 가운데 최초로 해외 공연을 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어떻게든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2013년 씻김굿을 소재로 한 '비나리'라는 작품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선보였어요. 한마디로 대박을 쳤죠. 현지 유력 일간지인 르 피가로(Le Figaro)지의 전문기자가 '한국의 보석 같은 작품, 몰리에르(1622~1673·프랑스에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인물)와도 견줄 만하다'라고 리뷰를 써 줬지 뭡니까. 과분한 칭찬을 받으니 그날 밤 잠을 제대로 못이뤘어요."

▶TV 드라마 '정년이'에서 국극(國劇)이 화제를 모았죠. 감독님 뮤지컬에도 국극의 창(唱)을 집어 넣으면 어떨까요.

"말씀 잘 하셨어요. 한마디로 '대박 예감'입니다. 그러잖아도 내년 의성에서 뮤지컬 '장한상(조선후기 의성 출신의 장군)' 초연이 예정돼 있어요. 그 작품을 국악 중심으로 꾸며 국극(창극)의 멋을 살려볼까 싶어요. 이참에 경북지역의 소리하시는 분들도 발굴할 계획이고요."

▶부산에서 먼 안동까지 와서 창작 활동을 하는 게 조금은 놀랍습니다.

"지역 문화예술을 창달하는 데, 천리길이라도 달려와야지요.(웃음) 안동에 연극배우가 너무 부족합니다. 지금, '안동표(標) 배우'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작품 만드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니까요. 배우가 많아져야 훗날 안동 연극계의 힘만으로도 번듯한 작품을 올릴 수 있습니다. 유럽 등지에선 중소도시에 시쳇말로 '하꼬방' 같은 극단이 세고 셌어요. 이런 극단들이 연중 끊임없이 연극을 만들면 지역 주민들이 관람해 주는 시스템이죠. 나아가 주민들이 직접 연극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바로 이런 게 지방 소멸을 막는 해법이 아닐까요."

▶가족 모두가 연극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내(심미란·53)와는 과거 20대 초반 같은 극단에서 만나 함께 연극을 하다가 결혼했죠. 피는 못속이는가 봐요. 두 아들 태규(28)·민성(23)이도 모두 배우로 활동 중입니다. 부모가 연극하는 걸 배 속에서부터 봤으니 말입니다. 동료 연극인들은 자식이 배우하겠다고 하면 말린다는데, 전 흔쾌히 허락했어요. 그 길로 애들을 해외공연에 데리고 가는 등 문물(文物)도 익히게 했죠. 큰 아들은 뮤지컬 '나는 독립군이다'에도 출연했습니다."

▶트로트 가수 영탁이 무명일 때 왕의나라 시즌2 '삼태사'(2019)에 출연한 게 훗날 화제가 됐었죠. 왕의나라가 '스타의 산실'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겠네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요. 왕의나라 무대에 올랐던 몇몇 배우들은 이미 TV 드라마에 출연했거나 할 예정입니다. '나는 독립군이다'에서 이육사 역할을 맡은 김준현이라는 친구를 눈여겨 봐주세요. MBC TV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있어요. 아마, 인터뷰 기사가 지면에 나올 때쯤이면 드라마가 시작했을 수도 있겠네요."

▶남은 연극 인생,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저만의 연극 문법을 지키며 '세계적 연출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끊임없이 해외공연에 나서는 것도 기왕이면 좀 더 큰 물에서 놀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죠. 어쨌든 세계인과 교류해야 우리 예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영화 '록키' 아시죠. 주인공 록키 발보아처럼 항상 도전자의 위치에서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딱 하나만 들려주세요.

"이른바 '연극학교'를 세울 계획입니다. 제도권 학교교육이 아닌 일종의 연극의 멀티플레이어 같은 공간이죠. 연극의 기초는 물론 공연·유통 등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연극 플랫폼'이죠. 예술을 해서도 밥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이씨는 국내 연극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연출가다. 2008년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연출상, 공주 고마나루전국향토연극제에서 2년 연속 연출상을 받았다. 며칠 전 추가로 물어볼 게 있어서 그에게 카톡 문자를 보냈더니 베트남에 와 있다고 답이 왔다. 내년 안동·의성 뮤지컬에 베트남 인민예인(배우) 한두 명을 캐스팅할 계획인데, 그걸 협의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그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는 천생 '하고집이'다.

글·사진= 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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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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