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SNL코리아' 시즌6 방송 화면.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의 인터뷰 장면을 패러디했다.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화면 캡처> |
☞ '불편한' 요즘 코미디 (1) 풍자인가 조롱인가 아슬아슬 줄타기 코미디
"불쾌하다." "단순한 유머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뭇매를 맞고 있다. 특정 인물의 말투와 몸짓을 희화화하는 등 조롱에 가까운 개그를 선보여서다. 한편 단순한 유머라며 가볍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나와 시청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19일 방영된 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이하 SNL) 시즌6 8화가 논란이다. SNL은 해당 편에서 그룹 뉴진스 하니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로 국정감사 참고인 조사를 받는 장면과 한강 작가의 인터뷰 장면을 소재로 한 코미디를 선보였다. '국정감사' 코너에서 하니의 대역을 맡은 배우 지예은은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의 어눌한 한국어 말투를 연기했다. 중대재해 사고로 총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증인으로 출석한 한화오션 정인섭 사장이 하니와 사진을 찍는 장면도 패러디됐다. 배우 김의성이 정 사장 역할을 맡아 이 장면을 연기했다.
하니의 어눌한 한국말·실눈 뜬 한강 묘사
'정년이' 외설적 희화화도 연이어 뭇매
연극계 "적당한 '선' 지키며 풍자해야"
평론가 "외모 비하는 원본가치 손상
대상 속성 '선택' 아닌 '조건'일 때 문제
사회적 약자를 다룰 땐 접근법 달라야"
②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 시즌6 방송 화면. 뉴진스 하니의 국정감사 참석 장면을 패러디했다.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화면 캡처> |
"수상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는, 음… 처음에는 놀랐고, 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어…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어요." 뉴스를 패러디하는 코너인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선 배우 김아영이 한강 작가의 인터뷰 장면을 연기했다. 기자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묻는 상황에 한강 작가가 과거 공개석상에서 보인 다소 움츠린 자세와 나긋한 말투를 다소 과장해 표현했고, 실눈을 뜬 채로 답변했다.
이에 대해 부산 남구 이해인(24)씨는 "타인의 몸짓은 웃음거리가 아닌데 웃음거리로 다뤄 보자마자 조롱 같고 불쾌했다"며 "코미디 프로그램인데 어떤 부분에서 웃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경북 경산 김동준(27)씨는 "말투와 모습이 비슷해서 신기했다. 그저 리얼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③ 지난해 넷플릭스 '코미디로얄'에서 원숭이 교미 개그를 선보인 잔나비정상팀. <넷플릭스 제공> |
코미디는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경쾌하고 흥미 있게 다루는 극 형식이다. 보통 인간 생활이나 사회의 모순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꼬집는다. 주 목적은 의미 있는 웃음을 이끌어내거나 강자를 풍자하는 것이다. SNL이 과거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도 그렇다.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권력자들을 신랄하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방송은 그렇지 않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재미만을 위해 패러디한 게 오히려 원본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코미디는 단순히 웃음만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 그는 "코미디, 그중에서도 패러디를 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원본보다 더 창의성을 띠거나 의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하니의 사례는 국정감사에서 나온 문제 제기는 다루지 않고 말투나 외모적 특징에만 집중했다. 한강 작가의 경우에도 내성적인 태도나 몸짓만을 부각해 원본의 가치를 손상시켰다. 정년이의 경우에도 해당 방송을 대중이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희롱했다"고 말했다.
표현 방식이 '풍자'와 '조롱'의 애매한 경계에 있다는 것도 문제다. 풍자와 조롱은 얼핏 보면 비슷해보여도 명백히 다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그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강자를 대상으로 할 때만 풍자다. 그런데 실제적 권력자와 단순한 유명인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자는 대개 유명인이지만, 유명인이 언제나 권력자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라면, 직업의 성격상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졌을 뿐인 사람은 유명인이다. 유명인을 향한다고 해서 조롱이 풍자가 되진 않는다."
"대상의 속성이 '선택인가 조건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권력자의 판단과 행위와 그 결과가 광범위하고 부정적인 대중적 영향을 끼쳤을 때, 그의 그런 '선택'과 관련된 사항들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가 스스로 선택한 바 없는 자신의 '조건'은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니와 한강은 권력인일까, 유명인일까. 이들의 말투와 몸짓은 선택일까, 조건일까. 코미디는 어디까지 풍자할 수 있을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연극계 종사자들은 어느 정도 용납되는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구지역 한 연극인은 "극에 정답은 없다. 특히 코미디는 당사자가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며 "SNL이 그동안 대중에게 사랑 받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선을 지키며 권력자들을 풍자했다. 그런데 이번 논란이 된 코너들은 선을 넘은 게 아닐까. 외형적인 코드만 가져와도 됐는데, 바꿀 수 없는 조건까지 유머거리로 삼았다. 그 선을 넘냐 안 넘느냐가 결국엔 연출이나 PD의 능력"이라고 했다.
대중은 코미디가 선사하는 유머를 즐긴다. 하지만 그 유머가 누군가의 고통이나 조건을 희화화하는 것일 땐 불쾌함을 느낀다. SNL의 이번 논란이 향후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유머의 기준을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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