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
누가 쓸었을까? 낙엽, 씨앗, 잔돌로 덮였던 등산로가 깨끗하다. 빗자루가 스친 선명한 자국이 마음 환하게 한다. 그냥 올라와도 숨이 찬데, 힘들게 비질한 사람은 누구일까? 도대체 언제 쓸었을까? 필자도 이른 시간에 오르는데 더 일찍 나와 쓸었겠지.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평소 나무에 기대어 둔 싸리비를 본 적은 있지만, 등산로 전체를 빠뜨리지 않고 쓸어 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누구에게 보수를 받고 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깨끗한 등산로를 만들고 싶어 쓸었을 것이다. 이런 자발적인 행동이야말로 이웃에 대한 진정한 헌신과 봉사의 표본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웃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일,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 밝아질 것이다. 겉으로는 주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개인의 이익에 골몰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 등산로 비질이 더 아름답다.
소리 없이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선배 한 분은 20년 동안 마을에서 봉사 단체를 이끌고 있다. 아동센터에서 '진로 음악 교실'을 열어 청소년에게 꿈을 심어주고, 주민과 청소년이 참여하는 버스킹을 기획·운영한다. 벽화 그리기, 쓰레기 줍기 같은 환경 운동도 주도하며, 교복 물려 입기,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도 펼친다. 주말마다 노인 요양 보호 시설에 가서 공연도 한다. 그의 나이 벌써 일흔이 넘었지만, 봉사 활동 추진 열정은 아직 마흔 살 청년과 같다. 그의 봉사는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지 않는다. 마을 지도자들이 입으로는 시민의 행복을 외치면서 의전이나 따지는 세태라 그의 봉사가 더 빛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동체의 발전보다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공적 권력을 무시하거나, 무력화하는 개인이나 집단도 존재한다. 세상이 풍요해졌기 때문일까? 개인의 권리 의식이 커졌기 때문일까? 물질 중심 사고가 퍼졌기 때문일까? 미디어의 영향일까?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다른 생각은 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힘이 곧 질서가 되고 있다. 이런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남'보다 '나'만 생각하는 세상의 내일은 어둡다. 다른 사람의 노력 덕분에 잘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이 안중에 없는 지도층의 행태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보통 사람도 '나'만 생각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세금 납부 회피. 대학생까지 뻗친 마약 범죄, 무개념 주차 행위, 과도한 민원 등은 모두 지나친 개인주의의 표출이다. 3달간 8만 건 정보공개 청구한 민원인, 개인 이사비 요청을 거절했다고 공무원 뺨을 때린 이, 법원의 집회 금지 결정을 무시하고 반년 넘게 집회를 이어가는 이들까지 모두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행태다.
개인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행복은 특정 개인만 누릴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모든 국민' '함께 살아가는 이'의 행복 추구권도 존중해야 한다. 그러니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힘, 양심과 도덕이 필요하다. 이 가치가 힘을 발휘할 때 사회도 발전한다. 따라서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를 배려하며 공동체 정신으로 생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공동체를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때, 지금보다 더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다.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