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학창시절에 읽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나의 침실로'라는 시는 만해, 소월, 지용과 함께 또 3·1운동과 그 좌절과 함께 내게로 왔었다. 그 기억이 꽤나 생생하여 20대에 시를 습작할 때면 제일 먼저 내 머리와 가슴을 채우곤 하였다. 이 시인들의 정서와 감각과 지혜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하고 극복해보려고 이러저러한 노력을 하면서 당대의 모던한 시들과 씨름하는 사이에 그들의 시는 어느새 내 시의 영역에서 서서히 잊힌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십 초중반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시에 대한 생각들이 다시 달라지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잊고 있던 그분들과 그분들의 후배세대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집중적으로 찾아 읽으며 지금 나와 우리세대의 시가 그분들에게 근간을 두고 있으며 그분들의 언어가 지금 우리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외심을 느꼈다. 이상화 시인의 시도 내게는 그랬다. 1901년에 태어나 1943년에 돌아가셨으니 43년을 이 세상에 계셨고, 그가 살았던 세상의 배경을 고려하면 지금의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경험한 적도 없고 또 조선이라는 자신의 나라를 빼앗긴 경험도 없기 때문에 마치 유리관 속의 유물이나 스크린 속의 가짜 영상을 보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감각과 체험이 99%는 휘발된 언어로 감지되는 것도 이상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평한 시절을 살고 있는 개인의 작은 유사체험으로 그분들의 험난한 인생과 시를 논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알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도 온다. 하늘과 들이 입술을 다물고 있어도 나는 그들이 나를 불러냈음을 안다 종다리가 그들의 입이고 고운 비로 가득 찬 도랑이 그들의 입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맨드라미와 들마꽃이 그들의 입이라는 것을" 이상화 시인은 하늘의 말과 흙의 말과 신령의 말을 알아들은 이다. 시인은 자신이 들은 신비로운 말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 적는다. "마리아와 나는 날이 밝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별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뉘우침과 두려움의 다리 건너에 있는 어린아이 가슴 같은 나의 별세계로, 피안의 침실로 서둘러 오라"고.
70여 편의 시가 있었음에도 생전에 시집을 한 권도 내지 않은 이상화 시인의 마음을 나는 잘 모른다. 그의 시집을 예전에는 문고판으로 지금은 전집으로 읽으면서 그의 시심이 빼앗긴 하늘과 들의 봄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10년에 겨우 한 권씩 시집을 내고 있다고 우겨대는 내 시심이 새삼 부끄럽다.
☞박판식 시인= 1973년 함양에서 태어나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밤의 피치카토'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등이 있다. 김춘수 시문학상, 동국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런데 사십 초중반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시에 대한 생각들이 다시 달라지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잊고 있던 그분들과 그분들의 후배세대에 해당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집중적으로 찾아 읽으며 지금 나와 우리세대의 시가 그분들에게 근간을 두고 있으며 그분들의 언어가 지금 우리 언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외심을 느꼈다. 이상화 시인의 시도 내게는 그랬다. 1901년에 태어나 1943년에 돌아가셨으니 43년을 이 세상에 계셨고, 그가 살았던 세상의 배경을 고려하면 지금의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경험한 적도 없고 또 조선이라는 자신의 나라를 빼앗긴 경험도 없기 때문에 마치 유리관 속의 유물이나 스크린 속의 가짜 영상을 보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감각과 체험이 99%는 휘발된 언어로 감지되는 것도 이상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평한 시절을 살고 있는 개인의 작은 유사체험으로 그분들의 험난한 인생과 시를 논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알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도 온다. 하늘과 들이 입술을 다물고 있어도 나는 그들이 나를 불러냈음을 안다 종다리가 그들의 입이고 고운 비로 가득 찬 도랑이 그들의 입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맨드라미와 들마꽃이 그들의 입이라는 것을" 이상화 시인은 하늘의 말과 흙의 말과 신령의 말을 알아들은 이다. 시인은 자신이 들은 신비로운 말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 적는다. "마리아와 나는 날이 밝으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별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뉘우침과 두려움의 다리 건너에 있는 어린아이 가슴 같은 나의 별세계로, 피안의 침실로 서둘러 오라"고.
70여 편의 시가 있었음에도 생전에 시집을 한 권도 내지 않은 이상화 시인의 마음을 나는 잘 모른다. 그의 시집을 예전에는 문고판으로 지금은 전집으로 읽으면서 그의 시심이 빼앗긴 하늘과 들의 봄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10년에 겨우 한 권씩 시집을 내고 있다고 우겨대는 내 시심이 새삼 부끄럽다.
☞박판식 시인= 1973년 함양에서 태어나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밤의 피치카토'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등이 있다. 김춘수 시문학상, 동국문학상 등을 받았다.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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