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 과거 계엄 기억 속 불안감 재현…지역 공동체도 흔들려
"전문가들, ‘건강한 일상 복귀가 관건…심리 상담도 필요’ 조언"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석호 교수 |
대동병원 박승현 부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10일 오전 대구 달서구 진천동 한 카페. 최모(65)씨는 커피잔을 앞에 두고 두 손을 떨었다. 그는 "밤새 뉴스를 확인하느라 잠 한숨 못 잤다"며 "대구경북은 현 정권을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했던 곳인데, 이번 사태는 배신감 그 자체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다"고 했다. 최씨는 45년 전 학창 시절 처음 계엄령을 접했을 때를 떠올리며 "그때는 어렸지만 이번엔 다르다. 믿었던 정권이 이런 일을 벌여 더 견디기가 힘들다"고 답답해 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부모 세대에게도 걱정을 안겼다. 4살 아이를 둔 신모(39·달성군 다사읍)씨는 "아이가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뉴스를 보고 무섭다며 울었다"며 "'저 사람들은 누구야?'라고 계속 물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이 기억 속에 이런 장면이 오래 남을까 봐 걱정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경북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배신감과 분노, 불안감이 한데 뒤섞이며 지역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은 극도로 커지고 있다. 이른바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다. 특히 심리적 여파는 개인 문제를 넘어 지역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웃 간 대화가 단절되고, 가족 구성원사이에서도 의견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주민들 사이에 정서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지역 사회 결속력도 약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TK가 이번 사태의 심리적 후폭풍을 더 강하게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대동병원 박승현 부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대구시의사회 의무이사)은 "기존 환자들 중에서도 그날 뉴스를 보느라 잠을 못 잤다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이어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당시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들이 많았다. 이번 사태도 유사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PTSD와 관련해선 "과각성 상태로 인해 일상적 자극에도 과도하게 예민해지거나, 반복적 악몽과 회상,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 감정 조절 어려움, 신체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런 증상들은 개인의 일상적 기능을 저해하고 대인관계, 업무, 가족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윤석호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TK는 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지역이다. 배신감 강도가 타 지역보다 훨씬 클 수 있다"며 "특히 계엄령을 겪었던 중장년층은 옛 기억이 되살아나며 심리적 충격이 가중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불면증, 분노, 불안감 같은 정서적 문제가 점차 증가할 수 있다. 지역 사회 전체의 정서적 안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번 사태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지역 차원의 구체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는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극복 방법"이라며 "미디어를 통해 사건 관련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하면 트라우마가 악화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통하며 일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가벼운 운동이나 산책 등으로 정신적 안정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