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아침, 그리고 문득 쉼에 대하여...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소리는 흡사 현실이라는 이름의 날카로운 신호 같다. 찌뿌드드한 몸을 간신히 펴고, 눈을 감은 채 양치를 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전날 밤 고민 끝에 골라둔 옷차림은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서둘러 눈에 보이는 대로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출근길의 풍경은 언제나 익숙하다.
무표정한 얼굴들, 서둘러 내딛는 발걸음, 지하철 통로를 가득 채운 무언의 긴장감.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이 아침의 풍경은,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출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나면, 문득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음을 실감한다. “나는 실업자를 꿈꾼다. 그것도 아주 돈 많은 실업자를..." 매일 마음속으로 소원을 되뇌어 보지만, 현실이라는 묵직한 문고리는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를 간절히 바라며 매 순간 애타게 손을 뻗지만, 닿지 않는 현실에 놓인 이들에게는 나의 바람이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이기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면,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떨구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설계했던 미래는 오래전부터 접혀 어디론가 사라졌고, 오늘은 그저 “오늘을 버티기 위한 하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부드럽게 쏟아지던 햇살은 어느덧 사그라들고, 차가운 바람이 등 뒤를 스친다.
콧등을 스치는 싸늘한 기운과 함께 마음 한구석에서 서러움이 고개를 든다. 계절이 바뀌는 이맘때면 삶에 대한 질문들이 한층 선명해진다. “지금이 과연 최선인가? 나의 최선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하루에도 열 번씩 몰려오는 의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가끔은 그 무게가 등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에 멈춰 있을 수는 없다. 때로는 “쉰다"는 결심조차 용기를 필요로 한다. 쉼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행위다. 떠나자. 무작정이라도 좋다.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공기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만나보는 것이다.
어디론가 떠난 여행길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하루하루는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쉼 속에서 찾은 작은 깨달음들이 무너졌던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떠날 때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우리의 마음도 더 단단해질 준비를 해야 한다. 문고리를 비틀어 열어야 할 현실의 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문 너머에 더 나은 나를 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군위에서 찾은 천국, 하루를 선물 받다
군위. 삼국유사의 땅이자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 대구시에 편입된 지 이제 막 시간이 흐른 이 고장은 자연과 시간이 어우러진 정취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공기가 맑고,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반기는 이곳은 여행자들에게 작은 안식처 같은 존재다.
이번 여정의 시작은 고민 없는 결정이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과 짧은 설명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커피와 파스타, 숯불 바비큐와 캠핑,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과장 없이 말하자면, 현대인의 골병 든 마음을 치유하기엔 더없이 적합해 보였다.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도착한 곳은 화본역 근처, 산 중턱에 자리한 감성 가득한 베이커리 카페는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공간이었다.
넓은 잔디밭과 트릭아트로 꾸며진 작은 해변의 풍경까지,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했다. 캠핑 감성 카페의 문을 열자 고소한 빵 냄새가 공기를 채우고, 높고 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따뜻하게 감쌌다.
한쪽 벽면을 채운 책장은 마치 “여기서 멈춰, 잠시 쉬어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창밖 풍경은 거대한 액자 속 풍경화처럼 완벽했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심에서 꽁꽁 묶여 있던 나의 생각들은 이곳에서 비로소 풀려났다.
어느덧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나는 캠핑장으로 향했다. 관리실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캠핑 끌차를 무료로 빌려 짐을 옮겼다. 공기는 맑았고, 카라반 내부는 안락했다. 보일러를 켜니 금세 따스한 기운이 돌았다.
밤이 깊어가자 숯불에 고기를 구웠다. 직화로 익힌 고기의 향은 감탄을 자아냈고, 고구마를 구워 입에 넣자 달큰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은 언제나 특별하다. 소박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이런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배부른 만족감과 함께 깔끔한 침구가 마련된 침대에 누웠다.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은 졸음에 스러졌고, 어느새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맞이한 아침은 신선했다. 창문 너머로 빗방울이 춤을 추었고,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자연의 리듬을 전해줬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무딘 시간을 보낸 후 카페에 들러 느긋하게 빵과 커피를 즐겼다.여행은 마무리 되지만,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스스로에게 선물한 짧은 시간이 이렇게나 큰 위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곳으로 오기 전 군위 취재 동료기자들에게 추천받은 맛집인 효령면의 참한우, 다락재쉼터의 한우 곰탕, 군위민속한우의 불고기 전골은 다음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 두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또 다른 선물을 받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미래에 대한 관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고 했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는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했다. 군위에서의 하루는 그 모든 진리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지친 이들이여, 삶에 눌리고 근심에 지친 당신들이여.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의 천국은 가까이에 있다. 대구 군위로 떠나 당신의 쉼과 평온을 찾아라. 그곳에서 당신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한유정
까마기자 한유정기자입니다.영상 뉴스를 주로 제작합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