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아 (시인·경영학 박사) |
노스탤지어는 부드러운 안개와도 같다. 오래된 서랍에서 번지는 낡은 종이 냄새, 느긋한 오후의 햇살, 그리고 어머니의 모든 것, 일순 숨이 멎을 듯한 이 잔잔한 기억들은 흐릿하게 아른거리다가 어느새 또렷해진다.
필자에게는 이상한 징후가 숨어 있다. 감동이 밀려올 때면 어깨가 으스스해지거나 코끝이 아프다. 그러다 재채기가 나오기도 한다. 차소림의 '낯선 휴식'을 오리 언니네 거실에서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멈칫 눈을 놓을 수가 없었고 어깨는 오그라들었다. 우려져 나온 쟈뎅 블루로 이내 가라앉혔지만 재채기가 한참을 이어갔다. 대학에서 가르치시는 언니는 필자의 멘토로, 화가 나면 입술을 삐쭉 내밀어 남편에게서 '오리'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언니는 그윽한 분이다. 이 분에게서 자연스레 노스탤지어를 느끼곤 하는 것도 따뜻한 분이어서, 따뜻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낯선 휴식'은 성장 과정에서 이어지는 변화를 주목한다. 우리는 때로 이러한 변화가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차소림의 그림 앞에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변화가 너무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다. 한순간, 아련한 무언가를 거칠지 않게, 그러나 긴밀하게 엮어내는 그것이야말로 노스탤지어의 마법이 아닐까 싶었다.
마법은 결코 어설픈 회귀를 예고하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 과거로 우리를 이끌어내는 매혹적인 힘이다. 이는 레트로 문화에 대한 선호와 맞물려 막연한 그리움과 알 수 없는 연민을 자아낸다. 그렇게 되살려진 그곳에서 우리가 알고 싶었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부드러운 안개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존재임을 깨달아가고 마음에 자리한 기억들을 한없이 끌어안는다.
그러나 노스탤지어가 언제나 아름다움만을 부르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미화된 기억들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우울을 낳기도 한다. 고른 시선으로 마주해야 노스탤지어는 삶의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편편한 기억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오늘과 마주하게 되고, 그 오늘은 우리의 꿈,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설명할 것이다. 급기야 우리는 늘 안고 살아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한껏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노스탤지어의 마법, 그러니까 그것은 아름다운 내일을 예언하는 신비로운 약속이라 할 수 있다.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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