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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일상에서 헌법을 의식하는 비극

2024-12-12

국민들이 헌법 '따위'는 잊고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대통령에 주어진 책무지만
너무나 어이없게 저버리며
혼돈과 불안 속에 갇히게 해

[더 나은 세상] 일상에서 헌법을 의식하는 비극
정혜진 변호사

직업상 내가 만나는 이들은 형사 재판에 서는 피고인들이다. 재판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실제로 그들 중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한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었거나, 혹은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주었거나 신체에 해를 끼쳤거나 심지어 생명을 앗아갔다. 그런 이들을 변호하는 일이 국선변호인인 내가 하는 일이다. 그것도 국민 세금으로.

종종 사람들은 묻는다. 왜 법은 피해자 인권보다 가해자 인권을 더 챙기느냐고. 피해자의 고통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가해자에게는 왜 공적인 돈으로 변호사까지 붙여주며 범죄의 변명을 들어주느냐고 분노한다.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을 아는 가족과 지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분노 섞인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헌법에 있다. 헌법에서 피고인은 '피해자 대(對) 가해자'에서의 가해자가 아니라 '국가 (對) 개인'에서의 개인이다. 물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피해를 준 만큼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고 잘못에 대한 대가인 벌도 받아야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각 독립된 개인이기 때문에 서로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국가와 개인은 전혀 대등하지 않다. 거대한 국가 앞에서 피고인은 너무나 미약한 개인이다. 형사재판 당사자(국가와 피고인) 사이에 조금이나마 힘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으면 국가가 나서서 변호인을 붙여서까지 모든 절차상 인권을 보장하면서 처벌해야 민주 국가의 정당한 처벌이 된다.

이처럼 내 일의 근거가 헌법이지만, 평상시에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간혹 드라마에서는 변호사가 헌법의 당당한 문장들을 인용하며 멋진 변론을 펼치지만, 현실 재판에서 헌법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변론하면 상당히 낯간지럽게 느껴진다. 그건 헌법에 따른 내 의무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 형사 사법 절차 곳곳에서 이미 헌법이 스며들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기에 굳이 목소리 높여 그 가치를 소환할 필요가 없다.

헌법이 정하는 일을 하고 있는 필자조차도 평소에 헌법을 의식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헌법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지난 한 주는 온 국민이 헌법의 가치를 생각하며 보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더 그래야 할 게 분명하다. 헌법에 명시된 일을 하는 변호사가 일상에서 헌법을 운운하면 낯간지러운 수준에 머물 뿐이지만, 평범한 장삼이사들, 12월3일 문제의 담화에 등장한 말로 표현하자면 계엄령으로 '다소 불편을 겪을' '선량한 국민들'이 각자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헌법을 의식하고 생활하는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기가 나쁘거나 드문 곳에서야 비로소 공기의 가치를 새삼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오직 대통령에게만 지우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헌법 '따위' 잊고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그 책무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최고 통치자가 너무나 어이없게 이를 저버림으로써,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누리고 법률이 정하는 의무만 다하며 살면 되도록 예정된 '선량한 국민들'이 혼돈과 불안 속에 갇혀 있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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