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없인 대화도 못 해요"…불안이 부추긴 정보 과잉 시대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가짜뉴스가 초래한 사회적 피로
대구 달성군 테크노폴리스에 사는 40대 워킹맘 이모씨는 요즘 하루 대부분을 탄핵정국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보낸다. 출근길에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퇴근 후 저녁시간은 온전히 뉴스시청에 할애한다.
그는 "예전엔 퇴근 후 드라마를 보는 게 하루의 낙이었는데, 요즘은 드라마를 볼 여유가 없다"며 "탄핵 이야기가 회사와 동네에서 핵심 화두여서 뉴스를 놓치면 다음 날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탄핵 정국 뉴스가 국민의 일상을 앗아가고 있다. 과도하게 노출되는 탄핵관련 뉴스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뉴스 시청 시간이 드라마 시청시간을 넘어서는 양상이다. 하루라도 뉴스를 놓치면 동네주민 간 대화에서 소외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생기는 상황이다. 탄핵 정국 속 과잉 정보유통은 또 다른 문제도 야기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뉴스가 SNS와 메신저를 통해 마구 판치고 있다. TV 뉴스나 온라인 매체를 통해 '수사 중인 내부 자료' '믿을 만한 제보자의 단독 정보' '폭로' 같은 솔깃한 제목으로 시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들 뉴스의 상당부분은 무속, 암살조 가동 등 자극적 내용 일색이고, 검증을 통해 걸러지지 않은 것들이다.
탄핵정국이란 혼란기를 틈타 양 극단으로 갈라선 시류를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유통되는 뉴스는 곧바로 진위여부가 가려지지 않는다. 일단 유통만 시켜놓고 보는 식이다. 가짜 뉴스가 시민 편가르기를 더 심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직장인 최모씨(50대·달서구 진천동)는 "지인이 메신저로 보내준 탄핵 관련 문서를 믿고 주변에 공유했는데, 나중에 가짜뉴스로 판명돼 곤란을 겪었다"며 "그 이후로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계속 퍼지고 있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특히 이미지와 함께 유포되는 가짜뉴스는 진위 판단이 더 어려워 혼란을 더 키운다.
초기 상황에만 보수·진보 등 자기 진영에 유리한 내용을 먼저 퍼트리는 방식이다. 재판 및 수사 등 나중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 상태를 어떻게든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끌고 가느냐에만 천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들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엇비슷하다. 당시에도 확인되지 않은 폭로와 의혹이 차고 넘쳤다. 이로 인해 피로감·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뉴스 소비로 인한 피로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기존 환자 중엔 뉴스를 보느라 잠을 못 잤다는 분들이 있다"며 "과각성(감각 예민도가 고양된 상태)으로 인해 일상적 자극에도 과도하게 예민해지거나, 반복적 악몽과 회상,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 감정 조절 어려움, 신체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건강관리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호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미디어를 통해 사건 관련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하면 트라우마가 악화될 수 있다"며 "가족, 친구들과 더 자주 소통해야 한다.가벼운 운동과 산책도 안정감을 찾는 데 좋다"고 조언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