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조용필, <단발머리> (1980)
10·26으로 유신통치가 마감됨과 동시에 1980년대는 조용필의 새로운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전자드럼과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파격적인 사운드와 가성의 목소리로 불린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당시 한국 음악계에서 파격적이었다. 코드와 편곡 모두 획기적이어서 주로 팝송만 듣던 젊은이들이 가요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노래였고, 조용필의 '오빠 부대'가 탄생하게 된 노래다. 단발머리 소녀가 남자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가사는 당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되던 순종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 이는 사회적 통념을 깨면서 기존의 성 역할을 뒤집는 혁신적인 표현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정권에 대한 비판은 억눌렀지만, 대중들의 문화적 욕망은 자유롭게 풀어줬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 미국의 KFC와 버거킹 1호점 상륙, 맥도날드 오픈 등으로 서구적 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24시간 편의점도 이때 등장했다. 학생들에게는 두발과 교복 자율화가 시행돼 이들은 새로운 여가 공간에서 자유를 즐겼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자유는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했다. 권력의 정당성이 취약했던 신군부 정권은 사회·문화적으로 폭력적 통제를 감추기 위해 체계적인 문화 정책을 구사했다. 헌법 제8조에서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며, 문화 정책을 헌법적 가치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전두환 정부는 문화 중장기 계획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민족문화를 강조했지만, 그 이면에는 체제 비판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대중음악계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음반 검열과 금지곡 제도가 만연했으며, 음반에 '건전가요'를 강제로 포함시키는 정책이 시행됐다. 대중가요는 체제에 맞춰야 했고, 이를 벗어나면 철저히 통제되었다.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단발머리는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의 성공은 음악적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의 자유와 변화에 대한 열망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이 곡은 단발머리가 담고 있던 자유와 변화의 메시지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단발머리 하고 지난날은 잊고 나 새롭게 태어날 거예요" AOA, <단발머리> (2014)
2014년 발표된 AOA의 단발머리는 현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위해 변화를 선택하는 모습을 그렸다. '너밖에 몰랐던 내가, 네 말만 들었던 내가 절대 두 번 다시 상처받을 일 없을 거예요'라며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가사는 과거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신여성을 대변하며 사회적 통념에 도전했다면, AOA의 단발머리는 개인적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 시대는 달랐지만, 두 곡이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자유를 향한 의지'였다. 단발머리는 억압된 사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사람들의 상징이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변화를 선택하는 개인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여성의 단발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요즘, 한파 속에서도 거리에서 직접 꾸민 응원봉을 흔들며 "내 최애(가장 사랑하는 멤버)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소리치는 젊은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을 다시금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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