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
20대에 걸쳐 13명의 대통령이 77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대부분 하야, 암살, 구속, 탄핵당했다. 대구 경북이 배출한 대통령 5명의 말로는 더 엄혹했다. TK 대통령들의 통치 기간은 전체의 딱 절반(38년). 총으로 정권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최측근의 총탄에 생을 마감했다. 전두환(무기징역) 노태우(징역 17년) 이명박(징역 17년) 박근혜(징역 22년), 네 명의 TK 대통령은 오랫동안 수형생활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치욕의 망명길에 올라 하와이 한 양로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초대 대통령이란 명예와 첫 하야란 오명을 함께 남겼다. 두 번째 하야는 윤보선, 세 번째는 최규하 대통령이었다. 혁명과 반란의 결과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1년 뒤 13시간 검찰 조사를 받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의 흑역사는 2025년까지 되풀이됐다. 몸을 건사한 대통령은 겨우 3명(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불가사의한 게 있다. 대통령의 불운은 계속됐지만 대한민국의 발전은 멈추지 않았다. 기적 같은 축복이다.
역대 대통령의 불운을 목도하고도 이 잔혹사에 기꺼이 뛰어든 용기(?) 있는 이들이 줄을 섰다. 10여 명의 후보군 중 출마를 공언한 사람은 홍준표 시장, 이재명 대표,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의원 등 4인. 모두 TK 연고자다. 각각 보수·진보·중도 대표성을 띤다. 홍 시장은 '명태균 리스트'에 발목 잡히지 않는 한 확고한 보수 일타 주자다. 잔여임기 1년을 넘는 6월 전 대선이면 대구시장 재보선도 치러질 수 있다. '김문수 급부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그의 보수 본색에 강경 우파가 결집했다. 어제 발표된 양자 대결 조사(조원씨앤아이)에서는 이 대표를 이겼다.(46.4 vs 41.8) 보수 후보가 이긴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밴드왜건(band wagon·쏠림)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김 장관은 홍 시장과 지지층이 겹친다고 한다. 판 돈을 건다면 '홍준표' 쪽이다. '김문수의 권력의지'가 의심스럽다. 유지경성(有志竟成), 뜻을 굳게 세워야 비로소 이룰 수 있다. 그는 아직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다. 유 전 의원은 그저께 "내가 후보가 돼야 이재명 이긴다"고 했다. 그의 어법상 사실상 출마 선언이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이 승부처라면 그의 본선 경쟁력은 확실히 비교우위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당내 경선부터 녹록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최대 관문은 공직선거법 2심 재판이다. 이것만 잘 통과하면 8부 능선까진 단걸음에 간다. 법대로라면 2심은 2월15일, 대법원 판결은 5월15일까지다. 매우 유동적이다. 여야가 시간 싸움을 벌이는 이유다. 이 논란은 법원이 신속히 클리어해야 한다. "이재명만 바라봐도 되나"(임종석·전 대통령 비서실장)는 지당한 말이 이제야 터졌다. 폭넓은 후보군은 민주당의 경쟁력을 높이고 위험을 줄인다. '모두 걸기'는 위험천만한 몰빵 도박이다.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심판론이 대이동 하는 조짐이 보인다. 유력한 대안 중 하나가 '김부겸 카드'다.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그는 이미 몸을 풀고 있다. 정치와 행정을 두루 경험한 합리주의자다. 유승민, 김부겸, 이준석 3인의 공통점이 있다. 지향점이 옳고 바른 건 분명한데 세(勢)가 없다. 그들에게 20, 각자의 진영에 80쯤의 책임을 묻고 싶다.
여도 야도 TK 출신이 대선 경주의 선두에 섰다. 첫 'TK vs TK' 구도다. 대구 경북의 위엄이다. 6번째 TK 대통령을 기대할 만하다.
논설위원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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